종의 도

요셉 목사
(한세대 신학대학원 졸업. 개척교회 목사)

윈스턴 처칠은 “모든 나라는 그 나라 국민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갖는다.”고 했다. 성경을 보면, 선민 국가인 이스라엘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단지 당대의 정치 지도자 뿐만이 아니었다. 제사장, 선지자 등 영적 지도자의 수준도 그에 못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크게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퀴어축제가 열리고 종교다원주의가 판치며, 강대국 간의 패권다툼 등 먹구름이 드리운 이 시대에 영적 지도자로 소명받은 자에게 어떠한 자질과 삶이 요구되는가? 마태복음 4장에서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의 종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례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시고,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유혹)을 받으러 광야로”(마 4:1) 가셨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세가지 유혹은 하나님께서 부르신 종들이 반드시 통과해야 할 관문임을 뜻한다. 이 관문을 통과하는 자만이 좁은 길을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귀는 일찍이 에덴 동산의 하나님의 청지기인 아담과 하와를 타락하도록 유혹하였다. 마귀는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7)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떻게 불순종하게 만들었는가? 마귀는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창 3:1)고 하면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대한 관점을, 단순한 먹는 문제로 바라보도록 하는 접근법으로 미혹했다. 그것을 시점으로 결국은 하나님 같이 될 수 있다고 유혹했다(창 3:1~5). 하나님의 종,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에게조차 동종유사한 방법으로 다가와서 유혹했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첫 번째 유혹은 인간 생존에 가장 기본이 되는 ‘먹고 사는 문제’였다.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금식하여 몹시 시장하셨을 때에, 마귀로부터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유혹을 받았다(마 4:2~3). 하나님께서는 먹고 사는 문제, 즉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등의 육신의 소리보다, 영의 소리인 하나님의 말씀에 더 귀기울이고 순종하는지를 살펴보신다. 하나님의 말씀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으면,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히 12:16)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에서와 같은 자들은 육신의 욕망을 다스리지 못하는 자들이요, 브올의 아들 발람처럼 재물을 쌓기 위한 수단으로 예언(설교)하며 기도하는 사역자들이다(민 22:5~24:25).

하나님의 종이 먹고 사는 문제, 물질의 문제에 집착하다 보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힘들다. 설교를 할 때도, 제직을 세울 때도, 은퇴 할 무렵에 후임 담임목사를 선정할 때도 그 기준은 성경이 아니라, 물질이 될 수 밖에 없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성경은 강조한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 16:13)

오직 예수님처럼 하나님 말씀에 대한 절대 신뢰함이 있어야 한다.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마 4:4; 신 8:3)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가나안으로 가는 광야길을 걸을 때, 그들이 심지도 거두지도 아니한 만나와 메추라기를 40년 동안 공급해주셨다(출 16:35). 종은 주인의 음성을 청종하기만 하면, 먹고 사는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이 믿음 없이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마귀의 두번째 유혹은 무엇일까? 하나님의 자리에 서 있으라는 것이었다. 마귀는 예수님을 데리고 하나님의 자리를 의미하는 성전 꼭대기에 세웠다. 마귀는 예수님께 뛰어내리라고 하면서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마 4:6; 시 91:11~12)라는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였다. 이는 종이 거꾸로 하나님의 자리에 서고, 하나님으로 하여금 종이 하는 일을 ‘받들어’ 시종하는 존재로 격하시키는 망령되고 망령된 유혹이었다. 종은 결코 주인이 아니다. 단지 상전인 주인의 청지기일 따름이다.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자로서, 구약의 하나님의 법(말씀)과, 그 하나님의 말씀을 완성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그대로 전해야 한다(마 5:17~19).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의 하나님의 법을 증거하시며,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말씀을 대언하셨다(요 7:16~19; 12:49~50). 예수님의 제자들과 사도 바울도 자신들의 색깔을 낸 다른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다(고후 11:4).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예수 그리스도의)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7~8)

모든 사도들은 하나님의 법(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감없이 전하였다(벧전 1:24~25; 요이 1:4~11).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약 2:10~12)

이와 반대로 성전의 꼭대기에 서 있는 자들은 누구인가? 성경의 기본 사상과 문맥 흐름을 무시하고, 철학에 기반한 학문적 관점으로 해석하며 신학이론을 만들고 설교하는 자들이다. 이러한 자들은 “성경의 권위보다, 성경을 해석하는 교회의 권위가 더 높다.”고 말한다. 또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구약은 폐지되었다.”고 주장한다. 혹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순종할 필요없이, 바울 서신서의 몇몇 구절들(구색을 맞추기 위해 복음서 몇 구절 포함시켜)만 마음으로 믿으면, 쉽게 구원받는다.”고 가르친다. “어떻게 현대 자본주의 시대에 구약의 법과, 복음서 말씀을 ‘문자적으로’ 다 지키고 살 수 있냐?”고 항변하며, 불효, 형제 간 재산다툼, 이혼, 동성애, 부동산 투기, 고리 대금업 관여, 공산주의 추종 등 온갖 죄악을 끌어들이는 삶을 살게 만든다. 강조하지만, 종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자이지, 자신의 사상과 신념의 목소리를 내는 자리가 아니다. 성전 꼭대기에 서서 복음을 변질, 희석시키는 행위는 추락의 파멸을 불러온다(벧후 2:1~3).

또한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 대신에 자신이 성전 꼭대기에 서 있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사람이 그룹이나 조직을 운영할 때, 대게 관료적으로, 또는 기업적으로 되기 쉬운 법이다. 기업 경영하듯이 교회를 치리(운영)하는 자들이 종종 있다. 당연히 기업같은 교회가 된다. 여기서 기업이 나쁘다는 뜻이 전혀 아니며, 교회를 기업처럼 운영하는 일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한 교회는 전도, 헌금 등을 하나의 실적 목표로 잡는다. 실적 달성을 위해 부목사들과 교인들로 하여금 영업사원처럼 뛰고, 서로 경쟁하도록 유도한다. 기업의 이사회처럼 교인의 극히 일부만 모인 당회에서 하나님의 뜻이 아닌, 다수결로 교회의 일을 결정한다. 모교회에서 파생한 자교회를 프랜차이즈의 지점처럼 운영한다. 교회의 영리 활동에 몰두한 나머지 교회의 본질과,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는 안타까운 모습이다. 영적 쇄신이 필요하다.

물론 초대교회와 같이 교인들이 서로 돕고 이웃에게 예수님의 마음으로 복음과 사랑을 나눠주는 교회들이 훨씬 많다. 교회를 하나님께서 다스리게 하시고 성경의 말씀대로 움직이게 해야 한다. 어떤 종도, 어떤 제직도, 어떤 성도도 성전 꼭대기에 감히 서려고 해서는 안 된다. 덧붙여 어떠한 국가 조직도, 성전 꼭대기에 서려는 행태는 삼가 금해야 한다.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마 4:7; 신 6:16)”는 준엄한 명령에 귀기울여야 한다.

예수님을 향한 마귀의 마지막 유혹은 거짓 신 숭배이다. 거짓의 아비인 마귀는 예수님을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마 4:8~9)는 참람한 말을 하며 유혹한다.

하나님의 종은 이 세상 만물의 창조주이시고 주인이신 하나님만 예배해야 한다. 모든 종교마다 구원이 있다는 종교다원주의 사상으로 포장한 WCC를 경계해야 한다. 일반 언론 뿐만 아니라, 기독교 매체를 통해서도 유혹의 손길을 마구 뻗어나가고 있다. 유대교와 기독교를 제외한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다신교이고, 그 신들은 이름만 다르게 불릴 뿐, 그 정체는 마귀 사탄이기 때문이다(기독교와 종교다원주의 칼럼 참조). 이 마귀 사탄과 그의 부하들은 온 천하를 꾀는(미혹하는) 자라고 성경은 명시한다(계 12:9). 거짓 신인데 참 신인 양 온 세계를 속여서 어지럽히는 옛 뱀 마귀를 숭배하면, 불과 유황 못에 들어가 세세토록 고통받는 형벌에 참여하게 된다(계 14:11; 20:10).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마 4:10; 신 6:13)는 하나님의 말씀에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 바쳐 순종해야 한다.

부르심의 초기부터 먹고 사는 문제의 걸림돌에 넘어지면, 넓은 길을 걷는 것이다. 알게모르게 재물을 탐하게 되고, 성전 꼭대기에 서게 되며, 거짓 신을 숭배하는 수순으로 가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주의 종부터 마귀의 유혹을 이길 때, 모든 성도들도 세상을 이기기 마련이다. 나아가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좇아야 한다(눅 9:23). 즉, 세상의 유혹에 대하여 매일 죽어야 한다는 뜻이요,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은 죽음을, 죽음과 방불한 고난을 지고 가는 길이라는 의미다. 하나님의 소명과 말씀에 대한 전적인 확신이 없이는 절대로 갈 수 없는 길이 종의 길이다. 종의 길은 좁은 길이다. 좁은 길을 걷는 종이 많아질 때, 그 민족과 나라는 복의 근원이 됨이요, 시온의 대로를 걷는 은혜가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