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창고와 정교분리

요셉 목사
(한세대 신학대학원 졸업. 개척교회 목사)

아름다운 해안을 따라 가보면, 천혜의 염전들이 펼쳐 있고, 그 옆에는 커다란 창고가 있는 풍경을 볼 수 있다. 알다시피 그 창고 안에는 엄청난 양의 소금이 쌓여 있다. 만일, 창고에 있는 소금처럼 교회 안에만 뭉쳐 있고, 좀처럼 세상에 흩어지려고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자칫 그대로 굳어버려서 소금기둥이 되어버리지는 않을까?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던 성막은 해체와 재조립이 가능한 이동식 성전이다. 이는 움직이는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제물 장사하는 행위를 뒤엎으실 때, 유대인들이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요 2:18)라며 반발했다. 예수님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 2:19)고 대답하셨다. 이는 예수님께서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요 2:21)이었다.

성전이신 예수님 안에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문이 있고, 대속의 피가 흐르며, 회개와 죄사함, 그리고 언약의 법궤가 있다. 영원한 속죄 제물이 되시고 대제사장이 되신 예수님께서는 도처에 다니시며 천국 복음을 증거하셨다.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교회의 몸인 교인들도, 예수님처럼 세상으로 움직여 나아가야 한다.

중세의 웅장하고 화려한 건축미의 극치인 로마의 성 베드로성당, 성 소피아성당 등은 그 자체가 거대한 예술 작품이다. 현대의 기독교가 예배당을 아무리 크게 짓고 고가의 인테리어를 사용한다 해도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다. 그럼에도 너나 할 것 없이 크고 아름다운 소금 창고(예배당) 짓기 경쟁을 해왔다. 하나님께서는 그 위용을 자랑하고, 수많은 금과 은 등이 사용되어 이루 말할 수 없이 값비쌌던 솔로몬의 성전보다도, 진실된 마음의 예배와 삶을 원하신다.

소금 농사 후, 소금 창고의 역할은 무엇인가? 간수를 빼고 숙성 과정을 거치게 하여 좋은 소금으로 완성시키는 곳이다. 마찬가지로 소금 창고(예배당)는 소금의 맛을 내도록 돕는 역할을 하면 충분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산에 올라가 무리들에게 말씀(산상수훈)하실 때, 소금의 맛을 내라고 명하셨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 5:13) 그 소금의 맛이 무엇일까?

하나님께 거제로 드려진 성물이 제사장의 몫이 될 거라는 소금 언약을 맺으실 때, 그 언약이 영원할 것이라고 하셨다(민 18:19). 이는 하나님의 언약(말씀)이 소금의 속성처럼 부패하거나 변질되지 않고, 영원불변함을 뜻한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소제(곡식제물)를 드릴 때, 소금을 치라고 명하셨다.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레 2:13) 하나님의 말씀은 소금의 맛이 있다.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롬 12:1)려야 하는데, 우리(산 제물) 안에 그 말씀의 맛이 들어갈 때, 세상의 소금이 되고 소금의 맛을 낼 수 있는 것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첫 번째 법(말씀)은 십계명이다. 십계명 이외에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법은, 십계명을 세부적으로 지키는 법이다. 이 하나님의 법(말씀)이 내 안에 녹아 스며들어가야 한다. 나아가 우리가 밟는 땅, 즉 가정, 학교, 일터 등에서도 스며들게 해야 한다. 그리하려면 우리의 삶에 밀접한 영향을 끼치는 정치의 영역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

보통 정치색을 말할 때 보수, 진보, 그리고 중도가 있다. 대체적으로 유권자들은 자신의 출신 지역에 기반을 둔 정당에 투표한다. 아울러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모든 정책들을 그대로 추종하는 성향이 있다. 크리스천도 예외가 아니다. 신앙은 교회를 따르고, 정책은 정당을 따른다.

인간의 제도와 사상 중에는 성경적으로 맞지 않는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간통법 폐지, 동성애 결혼법은 “간음하지 말라”(출 20:14)는 십계명을 어기는 법이다. 그러한 법들은 가정을 썩어 부폐하게 만든다. 그러한 정책과 법률에 반대하는 정치적인 목소리들을 내고 관철시켜야 한다. 그렇게 하는 교인들이 소금의 맛을 내는 것이다. ‘이는 정교분리의 원칙에 어긋나는게 아닌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정치와 종교의 영역을 나누자는 정교분리와 달리, 정교일치란 기본적으로 종교 신앙이 국가 통치이념이 되는 것이다. 형식적으로는 사제 계급과 정치권력이 하나이거나 분리되어 있는 형태가 있다. 고대사회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종교 사제 계급이 곧 정치권력 계급이었던 제정일치(정교일치) 사회가 많았다. 종교 신앙이 곧 국가의 통치이념이었다.

주후 313년 콘스탄티누스 1세의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가 공인되고, 392년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기독교 국교화로 로마제국은 기독교 신앙을 통치이념으로 삼았다. 왕과 사제 계급은 분리되어 있는 형태였다. 이후, 로마제국을 비롯하여 유럽사회는 대체적으로 기독교 신앙이 주류 정치이념이 되었다.

종교권력을 갖고 있는 성직자들과 세속 정치권력을 쥐고 있는 왕(또는 정당)의 관계는 어떠했을까? 때로는 기독교의 진리와 발전을 위해, 때로는 기득권과 이해 관계에 따른 협력과 견제의 연속이었다. 또한 종교 권력들 간에, 정치 권력들 간에 갈등이 있었을 때도, 위와 비슷한 목적으로 합종연횡이 있었다. 눈여겨 볼 점은, 특정 종교세력과 특정 정치세력이 각각의 세속적인 기득권을 목적으로 유착할 때면, 항상 전횡 및 부폐의 문제 등이 발생했다. 기득권에서 소외된 세력들은 항상 반발하는 법이다. 그러한 양태는 후에 정교분리의 빌미를 주었다.

근대 유럽은 계몽주의 사상의 영향으로 영국, 프랑스 등에서 발생한 시민혁명으로 시작되었다. 전제정치에 대항한 시민계급이 새로운 주체로 등장하였고, 민주주의가 주요 통치 이념으로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때문에 현대 유럽은 외관상 기독교 국가라고 표방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민주주의 사상과 정치체제로 주로 운영되는 정교분리 국가들이 되었다.

미국은 건국 당시에 기독교 신앙의 정체성을 띈 나라였지만, 여러 개신교 교인, 영국 성공회 그리고 캐톨릭 신자 등이 이민해 온 나라였다. 특정 교파를 국교로 삼으면, 국민들이 종교와 교파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대우 받거나 대립, 분열을 낳게 된다며, 토마스 제퍼슨의 주도로 ‘정교분리’, ‘종교의 자유’를 헌법에 명시했다.

역사적으로 정교분리에 관한 수많은 논의들이 있어왔지만, 결국 정치적인 목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주목할 점은,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교분리를 시행하는 나라들 중 상당수가 동성애 결혼을 합법화 하는 나라가 되었다는 것이다. 동성애 결혼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교회들을 탄압하고 있으며, 기독교 안에서도 동성애에 찬성하는 세력이 확산됨으로, 교회의 급격한 세속화가 진행되고 있다.

현대의 기독교인들은 민주주의 체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하는 일이 성경적인 것일까? 일부는 그렇고, 일부는 그렇지 않다. 공산주의는 더더욱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만 왕의 왕이요, 온 열방의 통치자이시다. 하나님의 법(말씀)으로 통치되도록 믿는 자들을 사용하신다.

믿음의 선진들은 하나님의 법(말씀)대로 살았고, 하나님의 법대로 살도록 선포했다. 선지자들은 세상의 군왕과 정치 권력을 향해 가감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선포했다.

나단 선지자는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을 어긴 다윗왕을 책망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다(삼하 12:1-14). 예레미야는 조국인 남유다를 향해 우상숭배와 많은 악행을 저질렀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으로 전쟁이 날 것(바베론 제국의 침공)이라고 예언하였다. 지도자 층과 백성들 모두에게 회개를 촉구했지만, 오히려 고관(대신)들은 대노했다. 시드기야왕에게 “이 사람이 백성의 평안을 구하지 아니하고 재난을 구하오니 청하건대 이 사람을 죽이소서”(렘 38:4)라고 요청하며, 예레미야를 가두었다. 세례요한은 간음한 헤롯왕에게(동생의 아내인 헤로디아와 결혼함) 잘못된 일이라고 외쳤고, 이 일로 감옥에 갇히고 목베임을 당하였다(막 6:17~28).

기독교인들은 세속적인 기득권을 위해 정치권력과 유착해서도 안되지만, 그들의 잘못된 것을 보고 수수방관하거나 타협해서도 안된다. 선지자처럼 어떤 위해가 다가와도 외쳐야 한다. 정치 지도자에게 십계명을 비롯하여 하나님의 법(말씀)에 기반한, 성경적인 가정, 정치, 경제, 사회 정책 등을 제시하며, 실현되도록 요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시에는 낙선운동을 포함하여, 정치적인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 하나님의 법에서 떠나고 돌이키지 않으면, 지지를 철회할 줄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법에서 떠난 정책은 죄를 낳고, 국가와 교회를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솔론몬의 사후 남북왕조로 분열될 때, 남유다의 르호보암왕은 여호와 신앙 정책을 펼쳤다. 이와 달리, 북이스라엘 여로보암왕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왕상 12:28), 우상숭배를 강요했다. 선지자들의 경고에도 우상숭배 정책을 노골적으로 강화하자, 북이스라엘에 있던 모든 제사장과 레위인들은 남유다로 향한다. 그리고 “(북)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 마음을 굳게 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는 자들이”(대하 11:16) 함께 남하했다. 그들은 르호보암왕을 지지하며, 남유다를 강성하게 하였다.

고인 물은 썩는 법이다. 기독교가 소금 창고(예배당) 안에서만 모이기에 힘쓰고, 머물러서는 안 되리라. 예수님처럼 세상 속으로 이동하는 성전이 되어서, 우리가 밟는 땅의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말씀의 소금 맛을 적극적으로 내야 한다. 그리할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음 받은 아름답고 풍성한 창조 질서의 생태계가 회복됨으로, 세상 모든 민족, 방언, 족속이 하나님을 찬미하며 주님께 돌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