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공개념과 성경적 토지관 2

요셉 목사
(한세대 신학대학원 졸업. 개척교회 목사)

하나님의 토지법에 있어 희년은 그 정점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12지파의 각 지파(tribe), 각 가문(family)에게 토지를 인원수에 비례하여 분배하셨는데, 그 땅을 보존하는 방법으로 토지 무르기(가난 등으로 자신이 판 땅을, 다시 되살 수 있는 권리)를 허락하셨다. 토지 무르기를 할 수 있는 여러 길이 있다. 먼저, 자신의 친족들이 토지 무르기를 할 수 있도록 경제적 도움을 줘야 한다(레 25:25). “만일 그것을 무를 사람(친족)이 없고 자기가 부유하게 되어 무를 힘이 있으면”(레25:26) 자기가 판 땅을 다시 사면 된다. 위 두가지 방법으로도 토지 무르기를 할 수 없는 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희년 때까지 소망을 갖고 기다리면 된다.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난 해, 즉 50년이 된 해가 희년(jubilee)이다(레 25:8~9). 이 때는 가난 때문에 자기 땅을 팔고 친족의 힘으로도, 자신의 노력으로도 토지무르기를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땅을 다시 찾을 수 있다. “자기가 무를 힘이 없으면 그 판 것이 희년에 이르기까지 산 자의 손에 있다가 희년에 이르러 돌아올지니 그것이 곧 그의 기업(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레 25:28)

또한 희년에는 종살이에서 해방되는 날이다. “그 때(희년)에는 그(가난으로 종으로 팔려온 자)와 그의 자녀가 함께 네게서 떠나 그의 가족과 그의 조상의 기업(토지)으로 돌아가게 하라”(레 25:41) 종으로 팔려온 자와 그 가족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가난의 대물림을 끊어주시고, 자유인의 신분으로 함께 고향 땅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셨다. “너희는 오십 년이 시작되는 이 해를 거룩한 해로 정하고, 전국의 모든 거민에게 자유를 선포하여라. 이 해는 너희가 희년으로 누릴 해이다. 이 해는 너희가 유산 곧 분배받은 땅으로 돌아가는 해이며, 저마다 가족에게로 돌아가는 해이다.”(레 25:10 새번역)

희년은 이처럼 경제적, 사회적 패자들이 부활할 수 있는 해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토지 무르기를 해주시고 종살이에서 해방시키시는 해가 바로 희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손수 큰 기사와 능력으로 히브리인들을 이집트의 극심한 노예살이에서 해방시키시고,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이 거주하였던 고향 땅이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가나안 땅을 무르게 하신 일처럼 자유의 해요, 은혜의 해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로 죄와 죽음과 저주의 종에서 해방되고, 영원한 본향인 천국으로 인도함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토지법과 인간이 고안해 낸 토지 제도를 비교해보면, 하나님의 토지법이 얼마나 탁월한지를 깨닫게 된다.

인류사의 토지 제도를 간략히 요약하자면, 고대 전제국가로부터 중세 봉건제도 국가까지 다양한 형태의 국가 소유와 사적 소유가 존재했다. 봉건제도 이후에 유럽에 등장한 자본주의는 토지의 사적 소유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공산주의는 토지의 국가 소유를 제도로 삼고 있다.

먼저, 봉건제도는 동서양에서 다 존재했던 제도이다. 왕을 정점으로 영주(제후, 성주), 기사, 농민(농노)들로 이루어진 피라미드 구조이다. 최상위 영주인 왕이 영주에게 땅(봉토)을 주고 충성과 병역의무를 요청하는데, 영주도 기사에게 땅을 주고 충성과 병역의무를 지게 한다. 농민들은 영주(지배 계급)에게 예속된 피지배층으로 영주의 땅에서 농사를 짓고, 영주에게 일정 농산물을 지대(rent)로 상납해야 했다. (지대란 토지소유자가 자신의 토지를 사용하는 자로부터 농산물, 화폐 및 기타의 대가를 받는 것을 말한다.) 후에는 농산물 대신 화폐를 지대로 바쳤다. 이러한 농노(농민)들은 중세 시대에 인구의 절반 이상이나 되었다. 이러한 부조리는 결국 유럽의 시민혁명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19세기에 봉건제도의 잔재가 남아있던 러시아의 경우만 해도, 차르 알레산드로 2세가 1861년 3월 3일에 농노해방령을 공포했을 때, 남녀 농노의 수가 무려 2,240만 명에 달했다. 비록 노예의 신분에서만 해방되었지만, 자기 땅이 거의 없었고 소유하기도 힘들었기 때문에, 여전히 대지주 밑에서 소작인이 되거나 노동자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이들이 나중에 러시아 공산혁명의 주체들이 되는 악순환이 왔다. 성경의 토지법처럼 해방된 농민들에게 경작할 땅을 분배해주지 않고, 기존의 대지주의 토지 소유 기득권만 인정하였기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자본주의는 일반적으로 15~16세기 유럽에서 중상주의 정책으로 시작된 상업 자본주의를 필두로, 18세기 산업혁명으로 본격적인 자본주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본다. 자본주의는 누구에게나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자유 경쟁을 바탕으로 시장 경제활동을 하기에 창의적이며 생산성이 높다. 생산활동을 하기 위해 지주에게 땅을 빌려(지대를 제공하고), 작물생산이나 양모업을 하거나 공장을 지으며 여러 상품을 만들어 냈다. 18세기 산업혁명으로 대량 생산을 하게 되면서 지주를 비롯하여 자본가들에게 더 많은 자본들이 축적되었다. 이에 비해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 환경과 낮은 임금에 시달려야 했다. 이로 인해 빈부의 격차가 늘어갔다. 물론 현대의 자본주의는 복지제도 등을 통해 단점을 보완해나가고 있다.

칼 마르크스와 19세기 동시대에 살았던 미국 정치가 헨리 조지는 자본주의의 병폐인 빈부격차를 해결하고자 나름대로의 토지관(토지 공유제)을 제시했다. 헨리 조지는 토지는 공공의 유산이며, 토지에서 발생하는 지대는 사유화 할 수 없고 사회 전체에 향유되어야 한다고 했다. 토지의 독점적 소유로 생기는 불로소득인 지대 때문에(당시 미국은 엄청난 땅을 소유한 대지주가 커다란 부를 쌓았음) 빈부격차가 커지므로, 모든 지대를 세금으로 걷으면 다른 조세가 필요없다고 했다. 여러 의견들이 나뉘지만, 헨리조지가 ‘토지 사유제’를 비성경적인 제도라고 여겼던 점 등을 볼 때, 궁극적으로 ‘토지 국유제’를 지향했음을 알 수 있다. 헨리 조지의 토지 공개념은 톨스토이, 쑨원, 그리고 공산주의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사유재산을 인정하며 토지 공개념을 주장한 헨리 조지와 달리, 칼 마르크스는 토지 뿐만 아니라 자본(재산)의 공개념까지 주장했다. 헨리 조지와 마르크스의 영향으로 공산국가들은 토지 국유제(토지 공개념)를 시행하고 있는데 그 결과는 어떠할까?

헨리 조지는 토지 공개념을 도입하면 부동산 투기가 사라질 거라고 예상했다. 실상은 어떠한가? 실제로 중국과 베트남 등 토지 공개념을 시행하는 나라에서 부동산 투기 광풍이 더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중국의 경우에 땅의 소유권은 국가에게 있는데, 주택이나 댐, 고속철도 등 토지 개발을 할 때에 기존 거주민(주로 농민)에게 적은 보상금만 주어 이주하게 하고, 많게는 10배 가까이 비싼 값에 개발업자에게 땅을 팔아넘긴다(약 50년~70년 간의 토지 이용권). 지난 10년 간 토지개발로 무려 6,500만 명이 집을 비우고 땅을 빼앗김으로 생계 터전을 잃었다. 2009년~2015년까지 7년 간 중국정부는 22조 위안(3조 5억 2000만 달러)의 땅을(토지 이용권) 팔았다. 중국 조세 세입의 1/3이다. 이러한 이유 등으로 소수 공산당원만 빼고 대다수의 중국인들은 극심한 생활고 속에 살고 있다. 토지 공유제를 주장한 헨리 조지가 이런 일들을 보았다면, 그의 이론을 바꿨을 것이다. 직전 칼럼에서 언급했듯이, 토지 공유제는 소수의 특권층만 빼고 인간을 극한 노예로 만드는 비성경적인 제도이다.

하나님의 토지법으로 돌아가야 한다. “모든 지파(tribe, 종족, 씨족, 부족), 모든 가문(family, 집안)에게 토지를 분배해주시며, 자손대대 먹고 살 수 있도록 ‘토지 소유권'(토지 사유권)을 인정해주신 하나님의 뜻”에 맞춰, 성경적인 토지법을 제정하고 실현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자본주의 처럼 소수의 지주, 자본가가 다수의 땅을 가지게 하거나, 공산주의처럼 소수 특권층인 공산당이 국가의 땅을 다 소유하게 되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탐욕으로 많은 가옥과 땅을 소유하며, 올려놓은 부동산 가치는 꺼지기 마련이다. 그러한 땅은 결국 황폐하게 된다.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 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내 귀에 말씀하시되 정녕히 허다한 가옥이 황폐하리니 크고 아름다울지라도 거주할 자가 없을 것이며”(사 5:8-9)

때문에 너도나도 땅투기를 하는 자본주의에서는 주기적으로 대공황과 경기불황이 찾아온다. 토지 국유제를 실시하던 공산주의 원조 국가인 소련은 불과 70년 만에 사라졌다. 또한 중국도 위에서 언급하다시피 모든 토지를 보유한 국가(공산당) 주도의 땅투기로 인해 자본주의 보다 더한 빈부격차가 생기고, 경제가 쇠퇴하고 국가가 쇠락해가는 것을 알 수 있다.

강조하지만, 주택과 토지는 상품이 아닌, 성경의 토지법처럼 거주하고 경작하며 일하는 터전이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부동산 가치를 마구 높이면 전반적인 물가도 올라가고, 그 부메랑은 자녀와 후손 세대의 내집 마련은 커녕 전월세와 양육생활비 걱정, 낮은 결혼율과 출산율로 고스란히 돌아옴을 보고 있지 않은가? 누구나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양육할 수 있도록 거주할 공간의 진입장벽을 낮춰야 한다. 어떤 가문(집안)이든 경작할 토지가 있으면, 적어도 먹고 사는 문제만큼은 해결된다.

아울러 예배당과 종교부지를 매매하며 수익을 올리는 일부 종교 기관들의 악습도 폐지되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성경을 따르지 않고 자본주의 이윤추구 논리만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자본주의 안에서도 성경적인 부분이 있다. 공산주의는 더 비성경적이다.

기록된 토지법 뿐만 아니라 성경의 모든 법(말씀)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합리적이며 보편적이다. 단적인 예로 인간이 만들어낸 토지 제도와 이론 등이 오히려 유토피아(이상향, 허구)적임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성경을 벗어난 채 또는 성경의 본 뜻과 다르게 인용한 채, 아무리 머리를 맞대고 어떤 합리적인 이론을 만들어도 오류가 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토지법, 나아가 하나님의 모든 법대로 살아가야 한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이 율법책에 기록된 그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고 네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 네 하나님께 돌아오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네 몸의 소생과 네 가축의 새끼와 네 토지 소산을 많게 하시고 네게 복을 주시되 곧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을 기뻐하신 것과 같이 너를 다시 기뻐하사 네게 복을 주시리라”(신 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