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관점의 재난과 전쟁

요셉 목사
(한세대 신학대학원 졸업. 개척교회 목사)

요즘 사람들의 하루 일과 중 하나가 휴대폰에서 대기오염정보를 확인하는 일이다. 미세먼지, 나아가 초미세먼지가 극성이기 때문이다. 거리에서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학교 체육 시간에도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이면, 운동장에서 체육 활동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초미세먼지는 단순한 환경적인 문제가 아니라, 재난임을 성경은 강조한다. “여호와께서 비 대신에 띠끌(먼지)과 모래를 네 땅에 내리시리니 그것들이 하늘에서 네 위에 내려 마침내 너를 멸하리라”(신 28:24) 신명기 28장은 모세가 가나안 입성을 앞둔 출애굽 2세대에게 모든 하나님의 법(the Law)을 강론하고 난 후, 하나님의 법을 순종할 때와 불순종할 때 발생하는 일들을 극명하게 대비하고 있다. 신명기 28장 1~13절은 하나님의 법(the Law)을 지켰을 때의 복이 기록되어 있다. 반면에 신명기 28장 14~68절은 하나님의 법을 어겼을 때의 저주(재난과 전쟁)가 기록되어 있다.

먼저 재난을 보면, 가정과 일터와 삶 속에 각종 전염병과 질환, 환경의 재앙, 기근 등의 유형으로 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호와께서 폐병과 열병과 염증과 학질과 한재와 풍재와 썩는 재앙으로 너를 치시리니 이 재앙들이 너를 따라서 너를 진멸하게 할 것이라”(신 28:22) “네가 많은 종자를 들에 뿌릴지라도 메뚜기가 먹으므로 거둘 것이 적을 것이며 네가 포도원을 심고 가꿀지라도 벌레가 먹으므로 포도를 따지 못하고 포도주를 마시지못할 것이며”(신 28:38~39)

아무리 방역을 해도 구제역, 조류독감 등이 발생하고, 뛰어난 신약을 개발해도 내성을 가진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인해 고통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진이나 쓰나미가 발생하는 이유도, 초미세먼지나 황사, 이상 고온이나 한파, 그리고 기근 등이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산업의 발전이나 무분별한 환경파괴 등으로 인해 다가왔다고 생각한다. 이는 표면적인 분석일 뿐, 성경은 그 원인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임을 강조한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신 28:15) 하나님의 법(말씀)의 생태계를 허물어 뜨리면, 인간의 삶과 자연의 생태계도 무너지기 마련이다.

전쟁이라 함은 정치, 경제, 민족, 종교 등의 이해 관계로 발생하는 무력충돌을 뜻한다. 정치적인 관점에서 보면 패권국가와 패권국가에 도전하는 나라와의 충돌이나, 이데올로기의 대립 등의 문제로 발생한다. 경제적인 시각으로 보면 자원과 교역(무역 물자, 판로 확보) 등의 문제로 대립이 일어난다. 민족적인 입장으로 보면 오랜 민족 간의 갈등으로 촉발된다. 종교적인 면에서는 서로 다른 종교와의 마찰이나, 교리 등의 문제로 전쟁을 부른다. 또한 이러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1,2차 세계대전이나, 인종청소(학살) 등과 같은 끔찍한 전쟁의 참화를 불러 일으킨다.

이 모든 것은 가시적인 모습일 뿐이며, 그 이면에는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재난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법(말씀)을 저버렸기 때문임을 사무엘서, 열왕기서 등은 증명하고 있다. 솔로몬의 신하였던 여로보암이 세운 북이스라엘은 시조인 여로보암 왕부터 호세아 왕까지 우상 숭배와 각종 죄악을 일삼다가 결국 주전 722년 앗시리아 제국에 의해 멸망을 당하였다. 남유다는 다윗과의 언약 때문에 다윗의 후손들이 계속 왕위를 이어갔지만, 우상 숭배로 인해 주전 586년 신흥 패권국인 바벨론 제국의 침공을 받았다.

선지서에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죄악상을 좀더 구체적으로 기록하여, 그로 인해 전쟁이 일어났음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의 법을 버리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불의한 법령을 만들고, 불의한 판결까지 행했기에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에 전쟁이 일어남을 이사야(주전 8세기, 남유다에서 활동) 선지자는 대언하고 있다. 물론 전쟁을 불러온 다른 요인들도 아울러 기록하고 있다.

“악법을 만들어 내고 부정한 판결을 내리며 가난한 자의 권리를 박탈하여 정당한 재판을 받을 수 없게 하며 과부나 고아의 것을 약탈하는 자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사 10:1~2 현대인의 성경) 이처럼 입법, 사법, 행정부 차원에서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고아와 과부에게 늘 마음을 쓰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나님의 뜻(신 10:18; 14:29)을 저버린 자(정권, 국가)들의 결과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 “전쟁에서 죽거나 포로로 끌려 갈 뿐이다”(사 10:4 현대인의 성경)라고 경고하신다. 하나님의 징벌 수단은 앗시리아를 통한 전쟁임을 말씀하고 있다. “앗시리아(앗수르)는 내 분노의 막대기이며 그 군사력은 이 백성을 벌할 나의 무기이다.”(사 10:5 현대인의 성경)

앗시리아는 징계수단으로만 쓰시려는 하나님의 생각(사 10:5~6)과 달리, 많은 나라를 파괴하고 속국(위성 국가, 식민지 국가)으로 삼으며 패권을 지향하는 모습으로 치닫는다. “그의 뜻은 이같지 아니하며 그의 마음의 생각도 이같지 아니하고 다만 그의 마음은 허다한 나라를 파괴하며 멸절하려 하는도다 그가 이르기를 내 고관들은 다 왕들이 아니냐”(사 10:7~8) 앗시리아의 이러한 패권주의 경향은 예외는 있지만, 역사상의 거의 모든 패권국가들에서도 대동소이하게 나타난다. 때문에 하나님은 앗시리아를 징계 수단으로 쓰신 후에, 벌하신다고 경고하신다. “주께서 주의 일을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 다 행하신 후에 앗수르 왕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을 벌하시리라”(사 10:12)

여기서 의문이 생길 것이다. 어찌하여 불의한 이방국가가 선민국가를 징벌할 수 있는가? 왜 세상 권력이 기독교인들을 핍박하는가? 아무리 선민 국가나 기독교인들이 잘못해도 이방국가나 세상 권력보다야 의롭지 않겠는가?라고 생각이 들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상대적 의로움이 아니라 절대적인 의로움을 요구하신다. 부분적인 순종이 아닌 완전한 순종을 원하신다.

만일 주일에는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교회 일도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데, 평일에는 십계명을 어기며 세속적인 기준으로 살아간다면, 과연 온전한 신앙인이겠는가? 한 발은 하나님 편에, 다른 한 발은 바알(맘몬, 물질신)에게 걸쳐 있다면 성경적인 기준에서 보면 크리스천이 아니다. 마치 자기 남편도 사랑하고 다른 남자도 동시에 사랑하는 음부와 똑같기 때문이다.

한 국가 내에서 서로 다른 정치 세력끼리 무력충돌(내전, 정변)이 일어나는 원인도 동일하다. 사무엘서, 열왕기서 등에서는 하나님의 법을 어겼기 때문에 전쟁이 발생했을 뿐만 아니라, 안으로는 기근 등 재난과 내전이 일어났음을 증언하고 있다.

다윗은 충신인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아까지 죽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파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보내어 다윗의 죄악상을 열거하시며,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삼하 12:10)고 징계하신다. 결국 다윗은 자신의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해 골육상잔의 내전을 벌여야 했고(삼하 15:1~18:33), 그 여파로 베냐민 사람 세바의 반란까지 겪게 된다(삼하 20:1~22).

솔로몬은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명이었는데, “솔로몬의 나이가 많을 때에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왕상 11:4)다. 이로 인해 하나님은 그에게 두번이나 나타나시고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왕상 11:10)고 경고하셨다. 솔로몬이 듣지 않자, “네가 내 언약과 네게 명령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왕상 11:11)”는 징계를 받게 된다. 솔로몬의 자녀인 르호보암 왕 때, 북이스라엘(솔로몬의 신하인 여로보암이 세운 왕국)과 남유다 두개의 왕국으로 분열되었다. 물론 표면상으로는 르호보암 왕의 잘못된 노동 정책 등으로 인한 민심이반이 원인이었지만, 이면에는 솔로몬의 우상숭배 죄임을 성경은 명시하고 있다.

북이스라엘은 여러 정변이 일어나고 정권(왕조)들이 계속 바뀌는 일이 있었는데, 그 역시 하나님의 법을 어겼기 때문이다. 북이스라엘 오므리 왕조의 아합 왕과 이세벨 왕비를 보면, 우상을 섬기는 죄악과 더불어 많은 하나님의 선지자와 종의 피를 흘리는 죄악까지 범하였다. 더군다나 나봇의 포도원까지 빼았는 죄까지 더하였는데, 이는 정권의 붕괴를 더 가속화시켰다. 아합 왕은 나봇의 포도원을 탐내었다. 이에 왕비 이세벨은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기 위해, 우상 숭배자였으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며 거짓 증거하고, 살인을 교사함으로 하나님의 계명들을 무더기로 범하였다(왕상 21:1~16). 아울러 그들은 하나님의 토지법까지 짓밟았은 것이다.

나봇의 포도원은 나봇의 가문 소유의 토지다.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가나안 땅을 각 지파(tribe), 각 가문(family)에게 분배해 주실 때, 그 땅을 함부로 처분하거나 빼앗을 수 없도록 ‘토지무르기법’과 ‘희년법’을 제정하셨다(‘성경적인 토지관과 토지 공개념’ 칼럼 참조). 일각에서 레위기 25장 23절의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는 말씀을 인용하여 토지 공개념을 주장하는데, 심히 왜곡된 주장이다. 성경의 기본 문맥과 전체적인 맥락을 무시하고 일부분만 인용할 때, 항상 잘못된 이론이 생긴다. 이는 가짜 뉴스를 만들 때와 똑같은 방식이다.

성경은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지, 국가의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는다. 토지는 하나님의 것인데, 각 지파(tribe), 각 가문(family)에게 자손대대 소유하며 경작하라고 나눠주셨다. 국가(정치) 권력이 나봇 가문의 토지를 빼앗은 일에 대하여 하나님은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 엄히 경책하셨다. “너는 그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고 하셨다 하고 또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하였다 하라”(왕상 21:19) 결국 아합과 이세벨은 정변으로 인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재난과 전쟁(내전 포함)이 일어나는 이유도, 물론 하나님의 복이 오는 이유도 선민국가(기독교 국가)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나라에도 동일하게 시행되는 원리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은 유대인에게만 적용되는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 만의 민족신도, 팔레스타인 지경 만의 지역신도 아니시고 온 열방을 다스리는 만유의 주이시기 때문이다.

때문에 성경에는 이집트를 비롯하여 앗시리아,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그리스), 로마 제국 등 강대국 뿐만 아니라, 열국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어떻게 통치하시고 일하시는지 잘 기록되어 있다. 물론 과거 뿐만 아니라, 미래의 마지막 때까지 하나님의 통치 원리는 동일하다.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요,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히 13:8)기 때문이다.

각종 재난과 전쟁의 위기가 다가옴은 눈에 보이는 것만 추구하는 삶에서 벗어나서,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삶에 관심을 가지라는 뜻이다. 세속적인 삶을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메시지다. 죄악을 눈물로 토하며, 마음을 찢고 참회하며, 삶을 돌이키는 자는 진노 중에라도 긍휼(건짐, 구원)을 얻게 된다. 나아가 하박국 선지자처럼 재난과 전쟁의 폐허 속에서 위로하고 다시 새롭게 하실 하나님으로 인해,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큰 소망을 갖게 되는 은혜를 누릴 수 있다(합 3:1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