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와 그리스 철학

요셉 목사
(한세대 신학대학원 졸업. 개척교회 목사)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소설이 있다. 젊은 지식인인 주인공의 1인칭 시점으로, 60대의 알렉시스 조르바와 함께 한 일들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과 조르바는 크레타섬의 광산 채굴과 노동자들의 감독을 맡게 된다. 주인공은 조르바의 세상 창조관, 결혼관, 노동관, 인생관 등을 어떤 철학자들에게도 들을 수 없었던 구수한 입담으로, 불륜을 저지른 일 등 저속적이고 세속적인 이야기들을 흡사 음유 시인같이 쏟아내는 조르바의 말의 성찬에 매료된다.

사도 바울은 2차 전도여행 중에 헬라문명의 중심지였던 아테네를 방문한다(행 17:15). 아테네는 우상으로 가득한 도시였다. 아테네의 수호여신인 아테나를 숭배하기 위한 파르테논 신전과 제우스 신전, 포세이돈 신전, 헤파이토스 신전, 엘렉테이온 신전 등 수많은 신전과 3만 개의 우상들, 그 신들을 위한 종교 제의와 축제들로 얼룩진 곳이었다.

사도 바울은 도시 곳곳에 있는 우상들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 “회당에서는 유대 사람들과 이방 사람 예배자들과 더불어 토론을 벌였고, 또한 광장에서는 만나는 사람들과 날마다 토론하였다.”(행 17:17 새번역) 바울은 유대사회의 주류계층인 바리새인 중에서도 최고의 엘리트 출신이었다. 하나님의 말씀과 여러 학문에 뛰어난 자였고(행 26:24), 논쟁 실력이 탁월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바울의 출중한 변론 실력을 눈여겨 보던 일련의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이 바울과 쟁론하게 되었다. 아덴은 우상의 도시였지만, 또한 서구 철학의 뿌리인 그리스 철학의 본고장이었다.

아테네인들은 지적 호기심이 많은 터라, 새로운 사상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행 17:21) 이에 아테네인들은 재판정인 아레오바고 광장으로 바울을 데리고 가서 새로운 종교사상에 대하여 변증할 기회를 주었다.

바울은 아테네인들에게 종교심이 많다고 칭찬하며 변증을 시작하였다. 바울은 길에서 알지 못하는 신에게 바쳐진 제단을 보았는데, 알지 못하고 예배하는 그 신이 바로 하나님이고,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라고 하였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직접 주신 분이고, 인간은 그 분 안에 살고 움직이며 존재함을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행 17:28)는 그리스 시인의 말을 인용하며 논증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설명하였다.

이토록 그리스인들의 신관과 세계관의 입장에서 이해되도록, 하나님에 대하여 논리정연하게 논증하였는데, 그 결과는 어떠하였는가? 소수의 사람들만 복음을 받아들인다. “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하여 믿으니 그 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행 17:34)

당대 그리스 철학자들에게 ‘말쟁이'(행 17:18)라고 불릴 정도로 학식과 언변이 뛰어났던 사도 바울은 아테네에서의 변증 중심의 전도의 실패를 맛본 이후에, 더욱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성령의 능력 중심으로 전도하였음을 강조하였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1~2)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 2:4~5)

사도 바울과 논쟁했던 그리스 철학자들에 대해 간단히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철학(philosophia)은 ‘지혜에 대한 사랑’이라는 어원을 가진 뜻으로, 인간과 세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주전 7세기에 등장한 최초의 철학자인 그리스 자연철학자들에게는 자연 세계에서 만물의 근원을 찾았고, 신이 자연 현상에 물리적으로 나타난다고 생각했다. 탈레스는 물을, 헤라클레이토스는 불을 만물의 근원(원리)으로 보았으며, 신은 물리적인 빛, 불과 동일시 된다고 여겼다. 자연철학자들에게는 비록 ‘신들’, ‘신적인 것’이라는 의미는 있었지만, 기독교처럼 무로부터의 창조 개념이 없었다. 무에서 유가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연철학 이후, 주전 5세기에 모든 존재를 존재하게 하는 근본 원리를 연구하는 학문인 형이상학(metaphysics, ‘자연학 다음의 책’이라고 불린 데서 기인함)이 대두되었다. 대표적인 형이상학 철학이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플라톤의 이데아론이다. 플라톤은 이데아(idea)는 현상 세계 밖의 세계이며, 모든 사물의 원인이자 본질이라고 하였다. 이데아는 영원불변하는 절대 이성의 참된 세계이며, 선의 이데아가 최고 이데아이다. 현실의 세계는 이데아 세계의 그림자이며, 가변적이고 일시적이며 불완전한 세계라고 주장했다. 플라톤은 지혜, 용기, 절제, 정의의 네 가지 덕을 강조하였는데, 이상적인 국가는 선의 이데아를 아는 지혜를 갖춘 철학자들이 통치(철인 정치)하는 세계라고 했다. 아테네의 부패로 인해 사회 지도층은 재산과 가족을 갖지 말야아 하고, 뛰어난 사람이 자손을 더 많이 갖도록 아내를 공동소유해야 하며, 장애인과 허약한 아이는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죽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이상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철인 과두정치) 성향을 보였다.

이와 달리,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 세계 안에 이데아가 있다고 하며, 현실 속에서 근원적인 원리(본질, 진리)를 찾으려고 했다.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학문 연구 목적은 어떤 사실이 있게 된 원인을 찾고 그 의미를 밝히고자 했다. 그는 이 세상과 인간은 어떤 의미와 목적에 따라 움직인다는 목적론적 세계관을 제시했다. 중용의 덕이 행복에 이르게 함과, 그 행복이 인생의 목적임을 강조하며, 중산층이 정치를 해야 한다는 현실주의자적인 면모를 보였다. 그의 과학적 발견과 이론은 오늘날 비과학적인 것이 많으며, 중용의 정치를 강조했지만, 그에게 수학했던 알렉산더 대왕은 많은 나라를 파괴하고 정복했다. 이러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은 서구 철학의 근간이 되었으며, 서구 사회 뿐만 아니라 기독교에도 많은 영향을 끼쳐왔다.

기독교는 초기 기독교 시대부터 이교도와 이단들에 의해서 끊임없는 공격을 받아왔다(갈 5:20; 딛 3:10).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벧후 2:1) 철학자 필로의 사상을 신약과 접목시킨 영지주의 등이 극성을 부렸다. 로마 제국 하에서 기독교가 점점 발전하자, 로마 다신교 정권의 서슬퍼런 핍박과 여러 이단들의 공세가 이어졌다. 네로 황제부터 시작하여 로마 황제들 중에 기독교를 탄압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주후 303년 2월 24일 기독교에 적대적이었던 갈레리우스 황제의 주도로 로마 다신교 제단에 제물을 공양하지 않는 자는 모조리 불태워 죽이고, 제국의 모든 교회의 뿌리까지 파괴하고 예배 목적의 집회를 금지하라는 포고문이 발표됐다. 여기서 주지해야 할 사실이 있다. 이 때 기독교 교리를 공격하기 위해 철학자들이 동원되어졌다는 점이다. 그들은 기독교 본질과 특성을 부지런히 연구하여, 기독교 문헌을 다 불태우도록 제안하며 기독교 박해에 한 몫을 단단히 한다. 로마 제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철학자들뿐만 아니라, 철학자 출신 황제들도 기독교에 호의를 갖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다신교 제단에 제물을 바치고 숭배하며 그들의 다신교 신앙을 입증하였다.

그러한 가운데 삼위일체 논쟁으로 인해 아타나우시스파와 이단인 아리우스파의 대립도, 양측을 각각 지지하는 교회들의 충돌도 극심하였다. 주도권 싸움으로 엎치락 뒤치락거리며 피비린내는 종교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기독교를 공인하고 첫 공의회인 니케아 공의회(주후 325년)에서 아리우스파를 이단으로 정죄한 콘스탄티누스 대제도 임종 시에 이단인 아리우스파의 세례를 받았을 정도였다. 이처럼 기독교가 공인 받은 이후에도, 이교도와 이단들의 공격은 멈출 줄 몰랐다. 이러한 여러 흐름들 가운데 기독교를 보호할 목적으로 호교론이 등장했으며, 변증 활동들이 이어져갔다.

중세 초기의 교부 어거스틴은 플라톤 철학의 입장에서 신학을 정립하고 많은 저술 활동을 하였다. 구교 신학의 근간이 되었고 중세 철학인 스콜라 철학(기독교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마리아 숭배, 무천년주의, 세례를 통해 중생한다는 교리, 연옥교리, 인간의 타락 이후에 자유의지가 박탈되었다는 교리, 성인반열에 올리는 시성식, 그리스도의 대리자가 무력까지도 행사하여 신정 정치를 구현하는 국가 교회가 유일한 교회라는 교리 등은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져오고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사용하여 논리와 이성으로 신을 증명하고자 하였고, 이슬람 교도와 여러 위협에 맞서 변증 활동을 하였다. 구교가 철학을 바탕으로 신학을 정립했는데, 이러한 영향은 신교에도 일정부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철학 개념을 수용하다보면, 그들의 물질적 개념의 신 인식, 관념적인 신 인식과 여러 종류의 범신론적인 신 인식 등으로, 무신론 내지는 성경과 다른 신관이 생기게 된다. 플라톤은 윤회 사상을 믿었고, 근세 철학자인 칸트는 기독교 신앙을 거부했으며, 헤겔은 범신론적 철학자였다. 현대의 철학자들도 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또한 철학에 심취하다 보면, 철학자들의 극단적인 이론도 수용하게 되는 경향이 발생하기도 한다.

나아가 그리스 철학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때, 그리스 신화의 다종교 사상에 물들 수 밖에 없다. 그리스 신화(다종교)와 철학의 관계를 보면, 그리스 철학 초창기에 그리스 신화(다종교)의 내용을 비판하는 철학이 대두되었다. 플라톤도 그러했지만, 자신과 그의 집단을 신화의 영향에서 벗어나게 할 수 없었다. 여러 문헌에 신화적인 내용의 문체가 들어갔음을 알 수 있다. 헬레니즘 시대에는 그리스 신화가 엘리트들의 지식의 향유물이었으며, 로마 제국때 유헤메로스 학파가 신화를 역사적 형태로 합리화 했고, 스토아 학파는 신과 영웅에 대한 설명을 물리적으로 해석했다. 중세 문예부흥때도 단순히 그리스 문학, 예술 등을 연구하는 복고 운동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리스 다신교 숭배운동도 같이 일어났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사상의 힘은 강렬하고, 한 번 빠지면 나오기 힘든 늪과 같다. 그리스 철학자들의 사상과 개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차용하면, 자연히 그리스 신화의 다신교 종교사상에 빠져들수 밖에 없다. 그리스 신화(다신교)는 모든 다신교 종교가 그러하듯 끊없는 신들의 족보가 펼쳐져 있고, 여신들이 있으며, 신들 간의 근친 상간, 불륜, 심지어 동물의 모습으로 변신해서 불륜을 저지르는 수간의 내용까지 담겨 있다. 신들끼리 대립과 배신이 있으며 절도, 살해도 저질른다.

때문에 철학적 관점으로 성경을 해석하면, 무신론, 범신론적 신 인식으로 흐를 뿐만 아니라, 다신교를 숭배하는 종교다원주의에 빠져들 수 밖에 없다. 성경의 성령님의 영감설에 의한 기록을 부정하며, 이혼과 불륜, 동성애를 지지하는 신학이론이 생기며, 물질신을 섬기는 기복주의 신앙이 출현하게 되는 이유다. 그리고 그리스 다신교 신들처럼, 기득권을 위해 서로 치고 박고 음해하며 빼앗는 종교 정치꾼들이 출몰하는 원인인 것이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인 젊은 지식인에게,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태고의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조르바가 그리스 신들의 현현처럼 느껴졌으리라. 그러나 그 끝은 텅빈 파르테논의 신전처럼 공허함 만이 메아리칠 뿐이다.

모든 학문은 비판, 비평해야 할 대상이지만, 성경은 비평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딤후 3:16). 철학은 오류가 없고 성경은 오류가 있다는 전제 하에, 철학(학문)의 관점으로 성경을 비판해야 한다는 성경비평학은 그 자체가 논센스의 극치다. 인문, 사회, 자연과학 등 모든 학문을 하나님의 말씀의 관점으로 비평하며, 성경을 입증하는 학문으로 만들어나가야 한다. 미적분을 개발하여 수학적으로 자연을 설명했던 뉴턴과, 전자기학을 이론적으로 완성한 맥스웰은 자연과학계의 거두다. 성경적 시각으로 학문을 발전시킨 믿음의 사람들이다.

재차 강조하지만, 하나님을 알게 하는 지식은 철학이 아니라, 말씀과 성령이다. 인간의 지혜와 지식으로는 하나님을 온전히 알 수 없다.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을 비춰주시고 깨닫게 하시는 성령님의 도움이 필요하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골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