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선지자적 사명

요셉 목사
(한세대 신학대학원 졸업. 개척교회 목사)

일제시대 당시 1% 안되는 기독교인들은 암울한 세상의 희망의 등불이었다. 교회는 독립운동의 산실이었고, 민중을 계몽하며, 근대화에 많은 이바지를 했다. 현재 한국의 상황에서 교회는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가?

 2019 새해, 대내외 환경은 그리 녹록치 않다. 2018 하반기부터 본격화된 미중 경제전쟁과 패권다툼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집권세력은북한의 비핵화 아무런 진전이 없는데도, 여전히 북한의 선의만을 믿고 따라가자고 한다.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신기루 같은 경제정책의 실패 등으로 나라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이와 같은 혹세무민의 정책들로 인해 민생은 도탄에 빠졌다.

 2천년 ,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암흑기에 오셨다. 로마 제국의 학정과, 무능하고 부패한 산헤드린공의회(최고의결기구) 기득권만 추구하는 종교 지도자들의 틈바구니에서 신음하는 백성들을 찾아다니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귀신을 내쫓고 병치료하시며, 죄인들에게 회개를 외치고 십자가 대속의 사역을 감당하셨다.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은 이러한 제사장적 사명 뿐만 아니라, 선지자로서의 사명도 행하셨음을 있다

 먼저 선지자(prophet) 장차 일어날 일들을 내다보는 사람이라는 뜻으로서. 하나님께서 꿈과 환상, 영감 등을 통해 부어주신 말씀을 그대로 선포하는 대언자들이었다. , 하나님의 대변인(spokesman)이다.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말을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말하리라“( 18:18)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말을 입에 두었노라“( 1:9)

 대개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이스라엘 백성들의 개인적, 사회적, 국가적 죄악들을 적시하며, 우상숭배, 성적타락, 불의한 정치, 재판, 경제 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대언했다. 아울러 타국가들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도 전했다. 물론 심판 뒤에 오는 회복의 말씀도 선언했다( 48:47; 3:17~19).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6:1)

 선지자의 사명은 결코 작지 않다. 선지자 모세( 34:10)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을 갖고 강대국 이집트와 대결하였으며, 결과 이집트의 노예로 살았던 히브리 백성들을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인도했다. 엘리야 같은 선지자는 바알과 아세라 다신교 선지자들과, 불의한 아합 왕가를 무너뜨리는 역할을 했다. 요나는 앗수르 제국의 수도였으며, 티그리스 동쪽 0.8km 인접한 인구 60만의 대도시인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심판을 전달할 , 집단회심이 이뤄졌다.

 만왕의 왕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도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셨다. “ 교훈은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고자 하면 교훈이 하나님에게서 것인지 내가 마음대로 말한 것인지 알게 것이다.”( 7:16~17 현대인)

 예수님은 종교적 위선과 백성들을 잘못된 길로 이끄는 종교 지도자들이자 정치 권력이었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제사장)들을 꾸짖으셨다. 기득권 세력의 거센 반발과 저항으로 십자가형을 받으셨지만, 예수님께서 전하신 하나님의 말씀들은 그들의 마음에 울림이 되었다. 바리새인으로서 산헤드린 공회원이었던 니고데모, 아리마대 사람 요셉, 사울(사도 바울) 등은 예수님의 제자로 변화되었다. 초대교회에서 많은 제사장들이 십자가의 도에 복종하는데 영향을 주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도에 복종하니라“( 6:7)     

 선지자는 하나님께 택함 받고 기름부음 받은 자로서, 어떠한 환경과 권력의 칼날 앞에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토하였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선지자들이 담대할 있었다. 내적 싸움에서 이기는 자는 외적 싸움에서도 이기기 마련이다.

 두려움, 낙심, 절망, 고독, 탐심과 명예의 유혹 등이 다가올 , 믿음의 선지자들은 넘어지지 않는 본을 보였다. 모세는 이집트의 왕족이라는 영예의 지위와 모든 보물보다 하나님의 사명을 택했다.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주심을 바라봄이라“( 11:24~26)

 이와 달리, 거짓 선지자는 애당초 하나님께서 부르시지 않았거나, 불렀어도 중간에 타락하고 변질된 자들이다. 예레미야서에 나오는 하나냐는 전형적인 거짓 선지자의 모습을 보인다. “선지자 예레미야가 선지자 하나냐에게 이르되 하나냐여 들으라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지 아니하셨거늘 네가 백성에게 거짓을 믿게 하는도다“( 28:15)

 거짓 선지자들의 특징은 권력에 기생하여 아부하고, 민심에 영합하는 평화와 번영을 주장하며,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자신의 생각과 사상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는 자들이다. 세상의 권력과 부를 사랑하는 자로서, 종교는 그것을 취하기 위한 수단과 방편이다( 28:1~11). 이러한 사람들은 성경 뿐만 아니라, 교회사에도 많이 등장한다. 일제 시대 신사참배한 자들 중에 종교다원주의를 신봉하는 자들이 나왔으며, 종교다원주의에서 공산주의를 추종하는 세력들이 나왔음을 성도들과 세상은 안다. 거짓을 계속 말하면, 믿어줄 거라는 순진한 생각은 어서 내려놓아야 것이다

 예수님의 몸의 지체를 이루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처럼 선지자적 사명을 실행해야 한다. 세상은 언제나 예수님의 모습을 닮은 기독교인들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목양 사역에만 충실하는데 발걸음을 멈춘다면, 세상의 눈에 자칫 종교 마케팅에만 치중하는 교회로 보이지 않겠는가?

 한국은 안팎으로 공산주의 국가들과 세력의 영향권에 있다. 알다시피 공산주의는 진보가 아니다. 진보의 탈을 전체주의적 제국 체제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말을 즐겨 인용하며, 좌파 운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진짜 잊지 말하야 인류와 민족의 역사들이 무엇인지 과연 제대로 알고 있을까 궁금하다.

 바벨론 제국부터 현대의 공산주의까지 전체주의적 제국 체제는 자신들의 체제 유지를 위해 거짓과, 기만, 강압적 폭력 등을 행사하는 공통점이 있다. 이를 위해 언론, 정치, 경제, 안보, 학문, 종교와 문화 시스템 등을 자신들의 기득권에 봉사하도록 치밀하게 설계하고 집행한다. 때문에 소수 특권층을 제외한 대다수의 일반 민중은 기득권의 노예가 수밖에 없는 구조에 갇힌다. 이러한 체계는 반성경적이므로, 시스템이 가진 태생적 결함의 성격상 붕괴될 밖에 없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노예 시스템을 싫어하신다. 역사상의 제국들이 쇠퇴하고 몰락했던 이유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 사회 분위기가 많이 바뀌고 있다. 장년 세대 뿐만 아니라, 2,30대의 청년 세대에서도 공산주의를 추종하는 좌파의 허구성에 대해서 눈뜨며, 깨어나고 있는 비율이 급속히 늘고 있다. 그간 음양의 박해 속에서도 각계각층에서 선지자적인 사명을 감당해 오신 분들이 많이 계신다. 독립운동 때처럼, 해외에서 조국을 위해 선지자적 외침과 도움을 주는 분들도 무수하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몸집이 교회들이 역할을 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처럼 교회 조직 기득권의 대변인이 아닌, 하나님의 대변인이 되어야 한다. 종교다원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변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대변인이 , 새해 어두움에서 빛으로 변하는 기쁨이 삼천리 강산 거리마다 꽃피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