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역사의 노예제도2

작성자
joseph
작성일
2019-03-04
조회
695

성경과 역사의 노예제도2

 

요셉 목사
(한세대 신학대학원 졸업. 개척교회 목사)

미국의 흑인작가인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Roots 1976 )라는 대하소설이 있다. 서아프리카 국가 감비아의 해안 마을, 주푸레에서 태어나 가족과 함께 평화롭게 살던 주인공 '쿤타 킨테' 17 낯선 노예상인에게 붙잡혔다. , 그의 인생은 송두리째 뽑혀나간다. 죽음의 노예선을 타고, 미국 버지니아주의 농장에 팔리면서 비참한 노예로 살아야했던 삶을 그린 작품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이집트에서 번성하게 하신 목적은 무엇일까? 다목적이다. 우선, 그들이 비록 노예살이를 했지만, 강대국 울타리 안에 있었기 때문에 소수 부락민에서 민족으로 번성할 있었다. 또한 다신교를 숭배하는 이집트의 노예살이를 통해, 마귀 사탄의 노예로 사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삶인가를 몸소 깨닫게 해주셨다. 이를 통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어두움에 속박되어 있는 이방민족의 빛과 소금으로 거듭날 있었다. 하나님의 때가 찼고, 이스라엘 민족은 자신들의 힘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이집트에서 해방되었다. 그들의 신분 역시 이집트의 종에서 하나님의 종으로 바뀌었다.

 여호와께서는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율법 the Law) 말씀하셨다. 중에는 노예에 대한 조항들도 담겨있다. 이집트에서의 채찍과 비명 소리가 여전히 귓가에 맴돌고, 상흔이 남아있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의미는 사뭇 남달랐었을 것이다

 레위기 25장을 보면, 이스라엘 동족과 이방인을 종으로 삼을 , 어떻게 해야 지를 말씀하신다. 먼저 이스라엘 동족이 가난으로 인해 종으로 팔려왔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집트에서 배운대로 종을 학대해야 할까?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품꾼과 나그네처럼 대우하라고 하셨다. "만일 너희 동족이 가난하여 너희에게 몸을 팔거든 너희는 그를 노예처럼 부려먹지 말고 품꾼이나 잠시 너희 집에 붙여 사는 나그네처럼 여겨 희년까지만 너희를 섬기게 하라"( 25:39~40 현대인) 명령하셨다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희년(Year of Jubilee 나팔의 )이라는 제도로 이스라엘 동족끼리 영원히 노예를 삼지 못하도록 만드셨다. 안식년이 일곱 지난 , 50년째 7 10 대속죄일에 수양의 등으로 만든 나팔을 불어서, 모든 종의 자유를 선포하게 하셨다( 25:8). 희년이 왔을 , 조상 지파에게 물려받았지만 가난으로 팔았던 땅을 다시 되찾고, 가난으로 종이 되었던 사람들을 자유민으로 회복시킨 제도였다( 25:8~55) 

 그렇다면, 이방인 종에 대한 규례는 무엇일까? 이스라엘이 출애굽하는 시기에 이집트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노예제도가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필요할 경우에 주변 국가에 사는 이방인들과, 이스라엘 안에 사는 이방인들을 종으로 있도록 허락하셨다. "만일 너희가 종이 필요하면 너희 주변에 사는 이방 민족 중에서 사올 있고 너희 가운데 사는 외국인의 자녀 중에서도 있다. 그들이 너희 땅에서 태어났어도 너희 소유가 것이다"( 25:44~45 현대인) 여기서 말씀은 노예 제도를 허락하는 대목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것이다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아브라함의 자손 뿐만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이방인 )에게도 선민의 증표인 할례를 행하라고 하셨다.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자를 막론하고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17:12) 모세와 아론에게 유월절 규례를 말씀하실 이방인은 유월절 고기를 먹지 못하지만, 이스라엘이 "돈으로 (이방인) 할례를 받은 후에 먹을 "(출 12:44 현대인)이라고 명하셨다. 더군다나 이스라엘의 모든 종은 외국인 종까지 포함하여 안식일에 일을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20:10). 

 이스라엘 백성이 돈으로 이방인 종은 말로만 종이지, 참으로 복받은 자들이다. 이집트와 같은 전체주의적 제국에서 압제 받고, 비참하게 죽어가는 처지에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팔린 종이 되면 어떤 신세가 되는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믿고, 백성만이 받는 증표인 할례까지 받게 되고, 안식일을 지킬 있는 수많은 복을 받게 된다. 이방인 종은 죽음의 노예에서 생명의 노예로 되는 것이다. 노예 출신들이 노예의 마음을 알고 보듬어주는 법이다. 이스라엘 역시 이집트의 종으로 있을 하나님께서 은혜와 능력을 지불하고 사신 종이기 때문이다. "너희 이스라엘 백성은 나의 (my servants)이다. 이것은 내가 너희를 이집트에서 인도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기 때문이다."( 25:55 현대인)

 이는 이스라엘의 주의 백성 뿐만 아니라, 열방의 주의 자녀들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사신 것을 보여준다. 성경의 노예제는 결국 마귀 사탄의 노예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종으로 삼기 위한 위대한 계획을 보여주는 것이다. 희년 제도와 돈으로 이방인 종에 규례를 보면 있듯, 실질적으로 '노예해방'이다.  

 신약에서도 로마 제국의 자유시민권자인 사도 바울의 '오네시모'라는 노예에 대한 입장을 보면, 구약과 동일선상에 있다. 오네시모는 '빌레몬' 물건을 갖고 로마로 도망쳤다가 감옥에 갇힌 바울을 만나, 예수님을 영접하여 회심하고 주인에게로 돌아간다( 1:9~10). 바울은 빌레몬에게 편지를 보내서 오네시모에 대한 선처를 부탁한다. "이제부터는 그를 종으로서가 아니라 이상의 사랑하는 형제로 대해 주시오. 나에게 이처럼 소중한 그는 종으로서, 주님을 믿는 형제로서 그대에게 더욱더 소중할 것입니다."( 1:16 현대인)

 나아가 바울은 오네시모가 주인 빌레몬에게 빚진 돈을 갚겠다고 했다. 이러한 사도바울의 제안은 로마 제국에서는 노예가 돈이 있으면 자유인이 있었고, 주인에 의해 해방되어 자유인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는 사실과 연결해 보아야 한다. 사도 바울은 노예주인 빌레몬을 비롯한 기독교인들이 노예지만 예수 그리스안에서 같은 기독교인 오네시모와 형제임을 인식하게 하며, 로마의 노예 제도를 변혁(폐지)시키려고 했음을 있다.  

 역사상 노예제도는 언제부터 시작했을까? 고대 시대부터 문명을 이룬 나라에서는 예외 없이 존재했다. 수메르 문명, 이집트 제국, 앗시리아 제국, 바벨론 제국 등에서 노예들이 있었다. 그리스, 로마 제국시대부터 역사상의 노예제를 간략히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그리스는 고대 그리스의 미케네 왕국(주전 17세기~12세기) 때부터 노예와 관련된 기록이 있다. 그리스의 노예제는 도시국가(폴리스) 체제 안에서 발전했다. 페르시아 전쟁(주전 492~448) 이후 노예제도는 그리스 문명의 중요 사회경제적 기반이 되었다. 농업과 산업에서의 노예노동은 정치 권력과 문물을 지탱해주는 핵심요소였다.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하여 그리스 철학자들은 대체적으로 노예제를 인정하였다

 헬라제국의 쇠퇴 이후, 그리스의 문물을 이어받은 로마는 주후 1세기 제국의 영토가 무려 4,800km 달할 정도로 확장되었다. 로마 제국 군대의 깃발이 가는 곳마다 많은 전리품이 로마에 안겼는데, 중에는 노예가 포함되었고 수는 점점 증가했다. 지중해 일대를 정복했으므로 다양한 민족, 인종 출신의 노예들이 존재했다. 주후 1세기 로마제국 인구는 5,000 명으로 추산되는 ,   1/3(1,600 ) 가량은 노예였다. 농사, 제분, 광산 채굴 노동집약적 일에 투입되었다. 일부만이 도시 노예로 살아갔을 뿐이다. 로마 시민의 오락을 위해 검투사로 내몰린 노예도 있었으며, 대개 노예들은 성적 유린에 무방비였다.

 주후 476 고대 로마 제국(서로마 제국) 사라진 , 7세기에 발흥한 이슬람교는 급속히 세를 확장하여 대제국을 건설해 나간다. 이전의 아랍 세계에서도 노예 제도가 있었으며, 이슬람 제국(주후 7세기~13세기) 전쟁을 통해 세력을 넓혀나갔기에 많은 포로들을 노예로 삼았다. 비잔티움(동로마) 제국과 오스만 제국 간의 전쟁으로 수많은 기독교도들이 이슬람 세계에 노예로 들어갔다. 이슬람의 노예 무역은 역사가 천년 이상이라고 전해지며, 노예 출신지는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중앙 아시아, 중부 동부 유럽 등으로 다양했다

 중세 유럽의 봉건제도는 왕과 영주 간의 봉토(토지) 제공과, 충성 의무를 매개로 하는 쌍무적 계약관계를 중심으로 성립되었다. 또한 '영주의 지배를 받는 마을' 뜻하는 '장원' 중심으로, 영주와 농노(serf)간에도 일정 넓이의 봉토 제공과, 지대(rent) 납부라는 쌍무적 계약관계도 함께 기반으로 했다. 농노는 평민이라고 하나, 실질적으로는 봉건 지주인 영주가 지배하고 운영하는 토지에 예속된 소작민에 불과했다. 더군다나 이런저런 명목의 많은 세금까지 내야 했다. , 준노예 취급을 받는 피지배 계층이었다. 농노는 사회적으로 거주 이동의 자유가 제한되었고, 경제적으로 영주와는 채권자, 채무자의 관계에 놓였기 때문이다.

 서구사회는 근세로 접어들면서 15세기에서 18세기에 걸쳐 중앙집권적 절대군주국가 체제로 변모한다.   체제 유지를 위해 상업과 대외무역을 통하여 부와 국력을 축적해야 했으므로, 중상주의 정책을 펴고 해외 식민지 개척에 열을 올렸다. 유럽의 여러 국가들이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대륙의 피식민지 국가의 자원과 인력을 수탈했는데. 그에 맞춰 노예 무역이 번성하였고, 18세기 말에 정점에 달한다. 16세기에서 19세기 사이에 아메리카 대륙으로 팔려나간 서아프리카 출신 노예들은 문헌에 따라 1,100~1,600 명으로 추정된다. 4% 정도가 미국으로 갔다. 미국 버지니아주는 처음에 아프리카인들을 계약 노동자로 대우했지만, 17세기에 노예제를 법적으로 합법화시켰다

 공산주의는 19세기 중엽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하여 창시된 사상이다. 1917 10 러시아의 레닌이 볼세비키혁명을 통하여 1922년에 최초의 공산국가인 소련을 건설하였다. 공산주의는 개인의 사유재산과 사유토지를 부정하고, 재산과 토지의 공유제를 실시하는 사상이다. 알다시피, 공산주의는 '집단농장' 통하여 노동력을 착취하고, 개인의 인권과 종교의 자유까지 말살하는 악랄한 노예제도이다. 때문에 소련은 70 만에 역사에서 사라졌다. 중국 공산당도 빈국으로 전전긍긍하다가 닉슨 대통령의 외교와 등소평의 개방정책 이후 시장경제를 받아들이긴 했지만, 공산주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 법이다. 현재 북한과 함께 소련의 전철을 밟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역사상의 노예제도를 살펴보면 많은 문제점이 있다. 심각한 인권유린이다. 노예의 노동력을 착복하며 인신을 구속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으로 예속시키며 살인과 폭력, 성적 학대까지 당하게 하는 반성경적이고 반인륜적인 제도이다. 노예제도를 통해 국가의 문물과 경제를 발전시킨 나라는 공통적인게 있다. 외형적으로는 발전하는 보이지만, 점점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고 상류층만 배불리게 하는 제도라는 점이다. 배부른 소수 기득권 상류층은 사치와 향락에 빠져서 사회에 도덕적 붕괴를 일으킨다. 뇌물과 부정부폐가 만연해지고 노예는 말할 것도 없고 일반 백성의 삶도 피폐해지는 수순으로 간다. 당연히 국력이 약해질 밖에 없다.  

 덧붙여, 성노예인 매춘부에 대한 중세의 관점을 짧게 정리하자면, 중세 구교의 신학을 구축한 어거스틴은 부부간의 자녀출산을 위한 성생활은 인정했지만, 아울러 남성의 성적 해소를 위해서 '매춘은 사회의 필요악'이라고 했다. 그러한 사상은 토마스 아퀴나스까지 계속 이어진다. 물론 구교 안에서도 매춘에 대한 반대 움직임도 있었지만, 16세기의 종교개혁가들에 의해 매춘은 엄격히 금지되었다.

 노예 해방을 위해 고군분투한 이들도 많았다. 영국의 기독교 정치가인 윌리엄 윌버포스(1759~1833) 인해 영국의 노예무역과 노예제도가 폐지되었다. 미국은 남북전쟁 , 노예해방에 대한 성경적 시각을 갖고 있는 링컨 대통령에 의해 1863 노예해방이 이뤄졌다. 이와 달리 구교는 중세에 노예제를 금지하였으나, 15세기에 교황 니콜라스 5세는 해외 영토에서 비기독교도들을 노예삼는 것을 법제화시키기도 했다.

 예수님께서 땅에 오신 목적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은혜의 ', 죄와 고통에 처한 자들을 해방시키는 희년을 전파하시기 위해서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4: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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