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직의 길

요셉 목사
(한세대 신학대학원 졸업. 개척 교회 목사)

전 세계적으로 기독교에 대해, 알게 모르게 박해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최근 중국 공산당은 지하교회인 가정교회에 대한 탄압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가정교회를 급습하여 십자가를 떼어 내고 성경과 성구들을 불태우며, 예배당 폐쇄 및 철거까지 자행하고 있다. 이에 항의하는 성도들을 감옥에 가두고 있다. 아울러 교인들은 신앙생활을 멈추지 않으면, 거주하는 집과 직장을 잃게 될 거라는 압력까지 받고 있다. 인터넷에서의 신앙 활동마저 막고 있다.

신앙 생활을 하는 신자에게, 더욱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 사람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때이다. 구약의 이스라엘 사회와 신약의 초대교회의 모습을 통해 제직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구약에서는 회막(성막)에서 일하는 레위인들과 장로들의 역할이 달랐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법을 주시고, 하나님께 예배드릴 처소인 성막을 만들게 하시며, 제사장의 일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맡기셨다. 제사장 외의 레위인들은 어떠한 일을 해야 하는가? 하나님께서는 “레위 지파는 나아가 제사장 아론 앞에 서서 그에게 시종하게 하라 그들이 회막 앞에서 아론의 직무와 온 회중의 직무를 위하여 회막에서 시무하되 곧 회막의 모든 기구를 맡아 지키며 이스라엘 자손의 직무를 위하여 성막에서 시무”(민 3:6~8)하라고 명하셨다.

이러한 제사장의 직무는 하나님이 택하신 아론의 자손들 외에는 다른 사람이 할 수 없었다.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세워 제사장 직무를 행하게 하라 외인이 가까이 하면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민 3:10) 아울러 레위의 세 아들인 게르손, 고핫, 므라리 자손들에게 성막에서 해야 할 일들을 구체적으로 분담해 주셨다(민 3:17~4:49).

광야에서 행군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점차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구원해 주셨던 일을 망각하고, 만나를 날마다 공급해주시는 은혜에 감사하기는 커녕, 고기가 없다고 불평불만을 늘어뜨리기 시작한다(민 11:4~5). 백성의 지도자였던 모세에게 모든 비난의 화살을 돌리자, 모세는 살 소망을 잃고 하나님께 죽여달라고 하소연을 한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 혼자 감당하다시피 하던 국가 행정의 일을 분담시키고자, 모세에게 70명의 장로를 선발하라고 명령하셨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노인 중에 네가 알기로 백성의 장로와 지도자가 될 만한 자 칠십 명을 모아 내게 데리고 와 회막에 이르러 거기서 너와 함께 서게 하라 내가 강림하여 거기서 너와 말하고 네게 임한 영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하고 너 혼자 담당하지 아니하리라”(민 11:16~17)

왜 이스라엘 노인 중에 70명의 장로들을 모으라고 하셨을까? 이스라엘은 야곱의 12아들의 후손들인 12지파(tribe, 부족)로 구성되어 있는 부족 연합체 국가였기 때문이다. 12지파는 각 지파마다 연장자인 장로들(elders)이 있었는데, 그 장로들이 자신이 속한 지파(tribe), 가문(family)의 족장 역할을 했다(출 3:16). 지파 사회에서 연장자에 대한 존경과 위계 질서는 절대적이다. 때문에 70명의 장로들을 통하면, 12지파의 각 지파에게 필요한 모든 일들이 위로부터 아래로 잘 흘러갈 수 있게 된다. 또한 신명기를 보면, 장로들은 자신들이 있는 성읍의 재판관 역할을 하게 되어 있다(신 22:15~18). 오랜 신앙의 연조가 있으며 인생의 쓴 맛, 단 맛 다본 경험의 통찰력과 지혜에서 나온 장로들이야 말로 그러한 일들을 하기에 제격임은 두말 할 나위 없다.

이러한 장로의 역할은 가나안에 졍착한 후에도 계속 이어진다. 룻기에는 보아스가 나오미의 친척 자격으로 ‘기업을 무르는’ 법적인 일을 진행할 때, 성읍의 장로들이 공증한다(룻 4:1~12). 다윗이 헤브론에서 왕이 될 때,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모였다(삼하 5:1~2).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매 다윗 왕이 헤브론에서 여호와 앞에 그들과 언약을 맺으매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삼하 5:3) 삼았다.

이와 같이 구약에서 예배 처소인 회막과 관련된 일은 레위인들이 전담했으며, 연장자인 장로들은 각 지파의 지도자로서, 재판관 등으로서 정치 활동들을 해나갔음을 알 수 있다.

신약에서도 장로들은 백성의 지도자로서 정치적 활동을 하였다. 예수님 공생애 당시에 로마 제국의 지배 체제 하에 있었던 이스라엘의 최고 의결 기구인 산헤드린 공의회는 모세 때의 70명의 장로처럼, 70명으로 구성된 정치 조직이다. 로마 총독에 의해 임명되는 대제사장이 의장이었고, 제사장들(사두개인), 서기관들(율법사, 바리새인), 그리고 장로들이 그 구성원이었다. 기득권 집단으로 변질된 산헤드린 공의회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침해하고, 백성들의 민심을 차지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시기하다가 결국 십자가에 못박기로 결심한다, 공의회에 끌어들여 심문하고, 거짓 증거를 만들어(눅 22:66~71) 로마 총독부에 고발했다. 또한 그들은 초대 교회의 부흥에 당황하고 분노하며 사도들을 옥에 가두었다(행 5:12~18). 물론 유대 사회에 가말리엘 같은 존경 받는 율법교사(바리새인), 지파의 장로들이 존재했다.

그렇다면 오순절 마가다락방의 성령강림 사건 이후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신약교회는 누가 교회의 일을 섬겼는가? 사도행전과 디모데전서 3장 등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베드로와 요한 등 사도들의 활동으로 예루살렘의 초대교회는 박해 속에서도 크게 부흥하였다. 중국 전역에서 핍박받고 있는 가정교회들은 평소 가난하고 소외된 자에게 가진 것을 나누고 돕는 등 자선 활동을 많이 해왔는데, 초대교회의 모습을 빼닮았다. 초대교회는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행 2:42)” 힘쓸 뿐만 아니라,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행 2:44~45)주었다.

제자(신자)의 수가 급증하게 되자 사도들이 직접 구제 일을 도맡아 하였는데도, 구제의 일을 제대로 다 처리할 수 없었다(행 6:1~2). 급기야 사도들은 그 직무인 말씀 사역까지 방해받기에 이르자, 제자들에게 구제의 일을 위해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행 6:3)고 말한다. 온 무리가 스데반, 빌립, 브로고로, 니가노르, 디몬, 바메나, 니골라 등 7명을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했다(행 6:5~6). 이들 일곱 명의 집사가 초대교회 제직의 기원이었다. 사도들이 설교하고 가르치는 일을 감당하고 일곱 집사가 행정의 일을 처리했는데, 이러한 모습은 구약의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직무의 연장선상에 있다.

디모데전서 3장에는 제직인 집사에 대한 자격과 역할을, 교회의 감독과 함께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하나님의 집을 섬기는 감독과 집사가 되기 위해 높은 수준의 기준을 제시한다. 먼저 감독(bishop)의 헬라어인 에피스코페(episkope)는 ‘조사’, ‘감독’, ‘주교’, ‘방문’이라는 뜻이 있다. 베드로전서에는 대제사장이시며, 목자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벧전 2:25)라고 말씀한다. 구교에서는 감독을 주교라고 부르며, 일반 사제의 상위 개념으로 쓰인다. 신교에서도 여러 교단이 감독을 고위 직제로 나타낸다.

감독은 기본적으로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하며 절제할 줄 알고 신중하며 단정하고 남을 잘 대접하고 잘 가르치는 사람”(딤전 3:2 현대인)이어야 한다. 또한 감독은 세상 사람처럼, “술을 좋아하거나 구타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관용을 베풀고 다투지 말며 돈을 사랑”(딤전 3:3 현대인)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감독은 교회를 잘 다스리기 위한 선결 조건인 자신의 가정을 잘 다스려야 한다(딤전 3:4~5).

아울러 감독은 “교회 밖에 있는 불신자들에게도 좋은 평을 받아야”(딤전 3:7 현대인) 한다. 디도서 1장에도 감독의 자격이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다. 감독은 믿은지 얼마 안 되는 사람이 해서는 안된다. 교만해지기 때문이다(딤전 3:6). 실제로 로마 제국 시대에 믿은 지 얼마 안되거나 이와 같은 자격이 안 되는 사람들이 주교로 임명되어서 여러 문제들을 야기한 선례들이 꽤 있다.

집사들에게는 어떠한 자격을 요구하는가? 집사들에게도 감독에 준하는 자질을 요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집사들도 단정하고 한 입에 두 말을 하지 않으며 술을 좋아하지 않고 더러운 이익을 탐내지 않으며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사람이어야 합니다.”(딤전 3:8~9 현대인) 그러나 겉보기에 이러한 요건을 갖춘 사람이라도, “먼저 시험해 보고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로 섬기게”(딤전 3:10 현대인)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집사의 아내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그들의 아내들도 이와 같이 단정하고 남을 헐뜯지 않고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사람이어야 합니다.”(딤전 3:11 현대인)

집사들도 감독의 요건처럼 가정을 잘 다스려야 한다.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들과 자기 가정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딤전 3:12 현대인) 초대교회 일곱 집사들은 어찌나 성령충만했던지, 스데반 같은 경우는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행 6:8)였다. 스데반 집사는 최초의 기독교 순교자이기도 하였다.

또한 장로에 대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구약의 장로의 의미와, 신약의 예수님 때의 장로 개념은 위에서 언급했다. 신약의 초대교회에서 쓰인 장로의 개념은 무엇인가? 장로의 헬라어인 프레스뷔테로스(presbuteros)는 ‘더 늙은’, ‘손 윗사람’, ‘산헤드린 회원’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행 14:23; 딤전 5:17).

우선 사도들은 초대교회 안에서 자신들을 장로라고 호칭했다.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베드로)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벧전 5:1) “장로인 나(요한)는 택하심을 받은 부녀와 그의 자녀들에게 편지하노니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요 나뿐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자도 그리하는 것은”(요이 1:1) 디도서 1장을 보면 디모데 전서 3장과 똑같은 감독의 자격이 나오는데, 장로와 감독이라는 단어를 혼용함을 알 수 있다.

초대교회에서 가르치는 일, 말씀 사역은 사도들에게 주어졌다. 사도들이 여러 지역, 여러 나라들에 가서 복음 전파를 하고 선교를 한 후, 그 지역 교회들에 장로들을 세웠다(행 14:23; 딛 1:5). 여기서 교회들에 목사들, 종들 등과 같은 말로 세웠다는 표현 대신에, 장로들을 세웠다고 말했음을 주지해야 한다. 그 장로는 교회를 다스리되, 가르치는 일을 해야 한다(딤전 5:17). 에베소서에 성도들을 온전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게 하는 사람들은  누구라고 하는가?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인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 교사(아볼로 같은)임을 기록하고 있다(엡 4:11~12). 구약에서도 백성들에게 율법, 즉 하나님의 법(말씀)을 읽으며 가르치는 일은 제사장들이 하였다( 대하 5:13; 느 8장; 렘 18:18; 학 2:11).

물론, 장로에 대해 여러 신학적 해석이 있고, 의견들이 분분하다. 개신교 교단들은 종교개혁가들 및 여러 신학적 전통 위에 장로 직제를 두고 있다. 강조하고 싶은 점은 말씀을 가르치고 교회를 다스리는 감독이든, 집사든, 장로이든 간에 그 자격 요건이 굉장히 까다롭다는 것이다. 교회 출석을 오래 했다고 해서 아무나 쉽게 세워질 수도 없고, 사회적 신분, 학력, 재력이 높다고 해서 무조건 세워질 수도 없다. 단순히 교회 안의 계급 체계나 명예직이 아니라는 뜻이다. 뛰어난 영성과 인품, 높은 윤리 수준의 삶,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성품과 삶이 요구되는 자리이다. 때문에 그러한 자격을 갖춘 초대교회들이 세상의 칭송을 들으며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하고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다.

예수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 이들이라면 예수님처럼 자기를 비워 낮추고, 종의 모습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며 교회를 섬겨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할 때, 초대교회처럼 어떠한 탄압의 시련과 수많은 유혹이 다가와도 굴하거나 타협하지 않게 된다.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큰 확신을 얻게 되고, 믿음의 담력이 생기며 세상을 이겨나가는 은혜를 맛보아 알게 된다(딤전 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