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과 하나님의 지도자

요셉 목사
(한세대 신학대학원 졸엄. 개척교회 목사)

구한 말, 대원군은 대국으로 여겼던 청나라의 아편전쟁 패배에 큰 충격을 받고, 그 원인을 서양에게 문호를 개방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그는 청나라와의 사대정책 외에는, 자본주의 서구 열강들을 일본을 포함하여 다 서양 오랑캐로 보고, 쇄국정책을 단행한다. 근대국가로의 발돋음의 기회를 놓친 한국은 일본 제국에 의해 강제합병되는 치욕을 맞게 된다. 대원군이 조선의 봉건왕조를 지키는 방법으로 택한, 중국의 주자학이라는 낡은 이념에 매몰된 결과였다.

현재 대한민국은 국가의 정체성과 북한과의 통일 방법의 이견 등으로 국론이 분열되어 있다. 현 정권과 여당은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삭제하고, 중국 공산주의식 토지 공개념을 도입하자고 주장한다. 그러한 지도자들을 기독교인은 어떠한 영적 분별력을 갖고 바라보아야 할까? 요한 1서 4장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먼저, 남북한의 분단 원인과 그 이후의 현대사를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945년 8월 15일 일본 제국의 강점기에서 해방된 후, 한반도에는 미국과 소련의 군대가 각각 남과 북에 주둔하고 그 영향권에 들어간다. 남한지역에서는 미국식 자유민주주의가, 북한지역에는 소련식 공산주의가 이식되었다.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해 남북한 총선거를 실시하지만, 북한의 인구수가 적어 불리하다고 생각한 소련의 반대로, 남한 지역에서만 선거가 진행되었다. 민주적인 선거방식으로 국회의원을 선출하며, 헌법을 제정하고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을 대내외적으로 선포했으며, UN의 합법적 승인이 있었다. 북한은 1948년 9월 9일에 김일성을 중심으로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을 세웠다.

공산주의식 통일을 원한 김일성의 침략으로, 1950년 한국전쟁(6.25)이 발발했다. 미군을 위시한 UN군의 참전으로 낙동강까지 밀렸던 전세가 역전하여, 압록강까지 진격하게 된다. 그러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후퇴하여 1953년 휴전을 하게 된다. 대한민국은 이승만 대통령의 외교력으로 한미 동맹을 맺음과,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발전 계획으로 소련, 중국, 북한의 공산주의 국가 앞에서 강력한 안보와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

그동안 남북한은 체제경쟁을 벌여왔으며, 북한의 대남적화 야욕은 셀 수 없는 군사도발로 이어졌다. 특히, 1970년대부터 김일성은 남한의 종교계, 대학가, 노동계, 정치계, 법조계, 언론계 등에 침투하여 공산주의 혁명가를 양성하는 전략을 세우고, 공작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미국과 소련이 냉전시대 때, 체제경쟁과 체제전복 전략을 세우고 실행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기독교인은 영적 지도자 뿐만 아니라 정치 지도자를 바라볼 때, 하나님께 속해 있는지 영적 분별을 해야 한다. 하나님께, 하나님의 계획에 속해 있지 않은 사람을 따르고, 맹목적으로 지지할 순 없지 않은가? 요한 1서 4장에는 하나님께 속한 영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시인하는 가의 여부다. 둘째,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시인하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사도, 선지자, 복음전하는 자, 목사, 교사 등)이 전하는 말, 즉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복음을 받는가의 여부다.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요일 4:2~3)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요일 4:6)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을 부정하는 모든 신학 이론과 사상은 하나님의 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미혹의 영에게 속한 것이다. 십계명을 비롯한 하나님의 법(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모든 신학이론과 사상도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영적 분별을 할 때, 크게 세 종류의 사례들이 있다. 첫째, 하나님의 성령에 속한 자들로 사도들과 초대교회 집사들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로 오심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고 전하는 부류이다. 둘째, 미혹의 영을 받은 자들로 자신들이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이라고 주장하고, 성경 말씀을 인용하는 이단 사이비 종교들이다.

위와 같은 두 가지의 사례는 신앙의 연륜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심지어, 믿지 않은 사람도 그것들을 어느정도는 분별한다. 이와 달리 신앙생활을 오래 하여도, 영적 분별을 제대로 못하는 세번 째 사례가 있다. 발람과 사울 왕 그리고 바리새인의 경우 등이 바로 그렇다.

모압 왕 발락은 출애굽하여 아모리인들을 물리치고, 모압에 진을 친 이스라엘 백성들을 두려워 하여 브올의 아들 발람에게 저주를 사주한다(민 22:1~6). 발람은 처음에 재물을 가지고 온 모압 장로들과 미디안 장로들로부터 저주 요청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 거절했다. 하지만 모압 권력자들의 지속적인 방문에, 결국 모압 왕에게 찾아가서 세 번을 예언했는데, 다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내용들이었다. 여기서 난해한 의문점이 생길 것이다.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말씀으로 예언했는데, 성경에서는 왜 그를 거짓 선지자라고 하는가? 그 해답은 다음과 같다.

발람은 모압 왕 발락에게 가서 하나님이 주신 말씀으로만 예언한다고 하며, 자신을 거룩하고 능력있는 선지자인 양 말했지만, 실상은 발락 왕 측에서 보낸 재물에 욕심을 갖고 저주할 심산으로 간 것이다.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벧후 2:15)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저주하려는 발람의 입술을 막고, 하나님의 말씀을 부어주신 것이 발람 사건의 핵심이다.

저주가 아닌 축복의 예언이 나오자, 발람은 모압 왕에게 저주 사주비(복채)를 챙길 목적으로, 모압 왕 발락에게 계략을 일러주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간음하고, 우상을 섬기게 한다(민 25:1~18).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계 2:14)

사울 왕은 적장인 골리앗을 쓰러뜨린 다윗에게 온 나라의 민심이 향하자, 그를 증오하다가 귀신들려 몇 차례나 다윗을 죽이려고 했다. 다윗이 라마 나욧으로 도망하자, 그를 잡으러 간 세 차례의 전령들이 모두 라마 나욧에 있는 선지자들처럼 예언을 해서 다윗을 잡을 수 없었다(삼상 19:20~21). 사울 왕도 직접 잡으러 갔는데, 사울 왕 역시 예언을 했다. “사울이 라마 나욧으로 가니라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도 임하시니 그가 라마 나욧에 이르기까지 걸어가며 예언을 하였으며”(삼상 19:23)

여기서 또 의문점이 들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 임해서 예언을 한 사울 왕이 왜 전쟁의 심판으로 죽었을까?”라는 점이다. 이 역시 다윗을 살려주시기 위해, 다윗을 죽이러 간 사울의 전령들과, 사울 왕에게 브올의 아들 발람에게 하신 것처럼, 강권적으로 예언을 하게 하신 것이 그 대답이다. 사울이 하나님께 속해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사울 왕의 후속 행적을 보면 알 수 있다. 사울 왕은 다윗이 숨어 있었던 놉 지역의 하나님의 제사장들을 학살하고, 후에 신접한 여인에게까지 찾아가서 점괘를 보는 우상숭배의 죄까지 저질렀다. 물질과 권력을 좋아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바리새인의 경우도 발람과 사울 왕의 경우와 비슷한 사례다.

요약하건대, 발람은 비록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했지만, 하나님의 복을 받는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상황에서 예언을 진행했다. 사울 왕 역시 하나님의 성령으로 예언을 했지만, 살인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한 상태에서 한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설교)하지만, 성령의 능력으로 예언하고 병고치며 귀신도 쫒아내지만, 마음 중심에 맘몬(재물)을 사랑하고, 간음과 동성애를 지지하며, 사람을 함부러 죽이는 공산주의를 추종하고, 다신교 숭배인 종교다원주의를 따라가고, 이웃에게 거짓증거 하는 등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님의 복음을 등지고 거부하면, 지옥의 심판을 받는다는 뜻이다(마 7:21~23).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1~23)

이 말씀은 모든 믿는 자에게 해당되는 말씀이다. 물욕에 빠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지키지 않는) 사람은 이 말씀을 이해하기 힘들다. 단지, 이단 사이비 종교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인 줄로 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

이와같은 발람과 바리새인 같은 맘몬숭배, 즉 우상숭배는 알다시피 죽음과 전쟁을 불러오는 무서운 죄악이다. 일제 시대 때 신사참배라는 우상숭배 죄악을 범한 한국은 북한의 공산화와, 6.25전쟁이라는 참화를 겪은 적이 있다. 현재 대한민국은 물질신인 맘몬을 숭배하고(물질 만능주의), 제2의 신사참배인 종교다원주의(WCC)를 섬긴 결과로, 북한의 고도화된 핵공격 위협과 제2의 한국전쟁의 위기 앞에 놓이게 되었다.

때문에 대한민국은 지금 이미 수십년 전에 회개한 신사참배 죄악만 재탕, 삼탕 회개할 때만은 아니다. 맘몬을 숭배하고 다신교인 종교다원주의 섬긴 것 등 현재의 죄를 회개할 때다. 또한 북한도 김일성 부자의 우상들을 세워 숭배하게 하며, 백성들을 노예화 시킨 것 등을 회개할 때다.

공산주의 사상을 멀리해야 한다. 마르크스, 레닌주의라고 일컬어지는 공산주의는 사유재산 및 토지사유 제도를 부정하고, 공유재산 및 토지 공유제(토지 공개념) 제도를 주장하는 전체주의적 독재 체제이자 현대판 노예정치 제도이다. 프롤레타리아(무산 계급)인 노동자, 농민의 세상을 만든다며, 그들을 선동하고 이용하여 부르주아(유산 계급)인 자본가 등을 무너뜨린 후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가? 정권을 잡은 소수의 공산당 통치계급이 새로운 부르주아 계급이 되어, 노동자, 농민을 오히려 더 착취하고 학대하는 제도로 변질되었다. 역사상 낙원을 약속한 정치체제들이 가장 인간을 파괴하는 정치제도였음은 두말 할 나위 없다.

공산주의(좌파)를 추종하면, 십계명을 죄다 어기게 된다. 집권 공산당의 독재자를 신격화 하고, 공산 독재자의 우상을 만들어 참배하는 일부터, 자본가 등 이웃의 재산을 탐내고 빼앗기 위해 거짓 증거까지 하는데 이르게 된다. 부모공경보다 공산당의 말을 더 따르라고 한다. 부모와, 어르신들을 향해 자신들 당을 지지하지 않으면, 입에 담지 못할 말로 모욕하고 경시하도록 유도한다. 간음죄인 동성애 합법화를 조장하여, 인류 존속 생태계를 파괴한다. 공산당 조직을 위해 사람의 생명을 하찮게 여긴다. 집단 정치범 수용소에 수많은 무고한 주민들과 기독교인들을 가두고, 굶겨죽이거나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러온 적그리스도적 조직이 바로 공산주의 국가들(좌파들)의 특징이다.

한민족의 번영은 공산주의 사상으로 이룰 수 없다.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과 대적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성도들을 탄압하는 정권과 정치세력은 반드시 무너진 것이 역사의 냉엄한 진실이다. 때문에 정치 지도자들은 북한의 잘못된 점을 묵과한 채, 단지 정치적 목적으로 북한과 연합하려고만 해서는 안 된다. 우상숭배자인 북이스라엘의 아합 왕과 남유다의 여호사밧 왕의 정략 결혼과 정치적 연합으로 인해 어떠한 결과가 일어났는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아합왕가의 일가 친척과 그 세력이 다 멸절되었다. 우상숭배자 아합 왕가와 연합한 여호사밧 왕의 자손들 역시, 젖먹이 요아스 한 명 빼고는 다 죽임을 당했다(왕상 22:1~왕하 11:2).

통일 전, 서독 정부는 동독의 공산정권에서 탄압받는 정치범 3만 3,755명을 데려오는데, 17억 3000만 달러를 사용하였다. 북한과의 평화통일과 인권을 모토로 하는 현 정권은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 있는 20만 명 가까이 되는 정치범들에 대해, 평화통일을 이룩한 서독과 같은 정책을 펼쳐야 하지 않을까?

최근에 일부 언론들이 왜곡된 사실을 인용하여 기독교를 부패한 조직, 극우단체로 몰아가고 있는 일들이 생기고 있다. 그간 기독교는 수십년 간 북한의 주민들을 위해 많은 식량과 물자를 지원한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북한을 돕자고 말로만 떠들며 북한 주민에게 자신의 재산을 나누지 않은 자들은, 즉 자기 돈이 아닌 남의 돈 모아서 주거나, 국민의 세금을 건네만 준 자들은 기독교를 폄하할 자격이 전혀 없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자고 하고, 중국 공산당식 토지 공개념(토지 공유제)을 하자는 것은 크게 잘못된 주장이다. 공산주의 국가로 가자는 위험한 언행이기 때문이다. 공산종주국인 소련의 몰락처럼, 이미 실패한 공산주의의 낡은 이념을 또다시 대원군처럼 추종하면 안 된다. 중국 공산주의 역시 경제 쇠퇴와 함께 서서히 붕괴 중이다. 누구든 알게 모르게 공산주의를 추종하고 좌파의 길을 걸었다면, 속히 회개하고 돌이켜야 한다. 그 길은 넓은 길이요, 필경은 사망과 심판의 길이기 때문이다. 영적 분별력을 갖고 국가 지도자들에게 올바른 길로 가도록, 하나님께 속한 지도자가 되도록 요청하고 행동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