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해방과 그리스도인

요셉 목사
(한세대 신학대학원 졸업. 개척교회 목사)

1945년 8월 15일 한반도 전역에는 일본 군국주의로부터 해방된 기쁨과 만세 함성이 울려퍼졌다. 남한 지역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전환되었지만, 북한 지역은 공산주의 치하로 들어감으로 또다시 깊은 수렁으로 빠졌다. 알다시피 공산주의에서는 소수의 공산당원만 빼고는, 대부분이 최소한의 권리마저 짓밟힌 채, 비참한 노예로 살아간다. UN은 2005년부터 지금까지 북한의 인권 유린을 비판하고, 제재하는 ‘북한인권결의안’을 매년 통과시켜왔다.

더욱이 현 집권 세력의 북한 최우선 정책과, 그와 맞물린 북한 통치자의 방남 문제로 여러 갈등 양상들이 점점 심화되고 있다. 서울 한복판에서, TV 등에서 북한 통치자를 노골적으로 찬양하고, 북한 통치자 측으로 인해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받았던 수많은 피해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다 용서하라는 주장까지 벌어지고 있다. 기독교인은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하며, 북한을 향해 어떠한 발걸음을 디뎌야 하는가?

먼저, 성경에서 말하는 용서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누가복음 15장의 탕자 비유에 등장하는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유산을 갖고, 먼 타국으로 떠났다. 방탕하게 살다가 재산을 다 날리고 심한 흉년까지 들어 굶주리자, 마음에 깊은 참회를 하였다(눅 15:17~19). 탕자는 아버지께 찾아가 잘못을 고하고, 용서를 구했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어 이젠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자격도 없습니다. (다만 저를 일꾼의 하나로 써 주십시오.) 라고 하였다.”(눅 15:21 현대인) 탕자의 아버지는 살아 돌아온 아들, 잘못을 빌고 변화된 아들로 인해 두번의 기쁨을 맛보았다.

고위 세무 공무원인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났을 때, 자신의 과오를 회개하며 그에 비례하는 조치를 결단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눅 19:8) 이 때 예수님께서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눅 19:9)라고 말씀하셨다. 죄인 삭개오가 회개하였을 때, 예수님께서 용서하시고 구원을 베푸신 것이다.

요한복음 8장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책잡고자 간음한 여인을 예수님께 끌고 온 사건이 있다. 예수님께서 땅바닥에 손가락으로 무엇인가를 쓰시고 난 후,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 8:7)고 말씀하셨다. 이에 양심의 가책을 받고 모두 떠났으며, 여인만 남았다. 이 때 예수님께서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요 8:11)고 명하셨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돌에 맞아 죽을 위기에 처한 간음한 여인에게, 다시는 범죄하지 말라는 조건을 달고 용서하셨음을 알 수 있다. 즉,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다시는 그 죄를 짓지 말라는 뜻이셨다. 성경은 죄의 회개와 용서를 분리하지 않는다.

북한의 3대 세습 독재정권은 자신들의 반인륜적 만행에 대해 참회한 적이 있었는가? 6.25전쟁 침략부터 연평 해전, 연평도 포격, 천안함 폭침, 목함 지뢰 사건 등에 이르기까지 한 번도 공식적인 반성과 사과를 표명한 적이 없다. 오히려 한국전쟁은 북침이라고 하며, 북한의 도발들을 한국의 자작극들이라고 거짓 선동만 해왔을 뿐이다. 그러면서 ‘우리 민족끼리’라는 말을 즐겨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대통령의 탄핵 요건은 ‘외환’ 혹은 ‘내란’에 관여되었을 때만 가능하다. 그 이외의 탄핵은 불법이다. 그런데 박근혜 전 대통령은 법률적 탄핵 요건을 갖추지 않았는데도, 후에 허위들로 밝혀진 기만적 여론몰이로 국회에서 탄핵소추가 통과되었다. 더군다나 헌법재판소는 ‘헌법수호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며 탄핵결정을 내렸다.

그 판결 법리대로 보면, 현 집권 세력의 헌법수호 의지는 어떠한가?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인 ‘자유민주주의’ 조항에서 ‘자유’를 빼려고 하고,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적 정통성을 부정한다. 반기업적 정책으로 기업 줄도산, 실업자 대량 양산, 자영업자들의 파탄 등 자유시장경제를 허물어뜨리고 있다. 게다가 국방의 울타리를 마구 훼손하며 약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행동들이 과연 자유민주주의 헌법에 합치되는 일들인가? 국가의 지도자는 자신의 주관적 사상과 이상만을 펼치는 자리가 아니다.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백성을 배불리게 하고, 나라의 국방과 국력을 강화하는게 기본 책무다.

아울러 중국 공산당은 6.25전쟁 때도 한반도 통일을 목전에서 방해하더니, 또다시 사드 배치 보복과 주한미군 철수의 의미가 내포된 ‘한반도 비핵화’를 강조하며, 많은 분야에서 한반도 내정에 간섭하고 있다.

이러한 공산주의는 적그리스도적 체제이다. 공산주의는 예수님과 그 몸인 교회를 대적하는 게 기본 특징임을 잘 알 것이다. 신약에서 예수님을 대적하고 십자가에 못박은 적그리스도 세력인 바리새인의 특성을 이해하고, 그 대응법을 성경에서 살펴보면 북한 해방을 위한 지렛대가 될 것이다.

바리새인은 기본적으로 성경 말씀을 왜곡하는 자들이다(마 15:3). 자신은 성경 말씀을 제대로 안 지키면서, 남에게는 성경에도 없는 조항들까지 만들고 다 준수하라고 요구한다(막 7:1~8). 자신들은 손 하나도 까닥하지 않으면서 남들에게는 무거운 짐을 지우게 한다. 자신에게 있는 들보 같은 큰 문제는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남의 눈에 티같은 작은 문제는 침소봉대하고 정죄한다. 돈과 권력을 좋아하며(눅 16:14), 여론을 조작 및 선동하는 특징들이 있다(막 15:1~15). 즉, 이들은 철저한 이중 잣대로 자신들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며, 남들에게는 한없이 무자비하다(눅 18:11~14).

이러한 적그리스도적 세력의 거짓 선동과 가짜 뉴스를 계속 접하다보면 하와처럼 된다. 하와가 선악과 나무에서 마귀의 거짓말을 반복해서 들었을 때, 지적 체계와 신앙이 붕괴되어 마귀 말을 믿고, 선악과를 먹게 되었다(창 3:1~6). 이는 투자사기, 보이스피싱(전화 사기) 등을 당하는 사람의 경우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결국은 허위로 판명된 광우병 선동 때, 대중들은 언론에 도배된 거짓말로 세뇌되었다. 그 결과로 정상적인 지적 체계가 망가졌기 때문에, 탄핵 선동 때도 동조하게 된 것이다. 진리를 바꾼 신학 이론을 꾸준히 학습함으로 초래한 지적 체계의 붕괴로 인해, 종교다원주의, 공산주의, 동성애 등에 동조하는 것이다.

하와처럼 마귀의 거짓말에 속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예수님처럼 진리인 성경 말씀으로 마귀의 지속적인 거짓말에 계속 대적해야 한다(마 4:1~10). 그리할 때, 거짓인 마귀는 떠나간다(마 4:11).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에 바리새인들의 수많은 논쟁 공격에도, 성경의 말씀으로 그들의 잘못된 논리를 파하셨다.

거짓은 진리, 진실을 가장 두려워한다. 공산주의 사회에서 자유로운 정보 유통과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까닭이다. 진리와 진실로 거짓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외쳐야 한다. 반인륜적 행위, 반헌법적 행위, 반사법적 행위, 반역사적 행위 그리고 반기독교적 행위 등을 선지자적 사명으로 외치는 분들이 교회 안팎으로 많다. 그 진실의 함성이 점점 커져가고 있으며, 공산주의라는 여리고 성에 균열을 일으키고 무너뜨리고 있다.

북한과 중국의 공산당은 회개의 문이 닫히기 전에 속히 돌이켜야 한다. 하나님과 인류와 민족과 역사 앞에 회개하고, 그에 상응하는 조치들을 취해야 한다. 중국 공산당은 1, 2차 아편전쟁 때의 치욕은 잊지 않으면서, 왜 다른 나라들을 강포하게 대하는가? 내가 고통스러우면 남도 고통스런 법이다. 북한은 비핵화를 실행하여 민족공존의 틀을 마련하고, 자유시장경제의 확산과 과감한 인권보호 조치들을 취할 때, 고대하던 번영의 길이 펼쳐진다. 회개는 굴종이 아니다. 진정으로 사는 길이다. 통 큰 결단을 모두가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