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와 동성애 2

요셉 목사
(한세대 신학대학원 졸업. 개척교회 목사)

퀴어 축제가 이곳저곳에서 늘어나고 있는 데 반해, 동성애가 잘못됐다고 외치는 소리들은 그렇지 못하다. 일부의 기독교인들, 국민들 만이 힘겹게 목소리를 낼 뿐이다. 이 시대에 현인들과 학자들은 어디에 있는가? 동성애를 지지하고, 양심의 소리는 외면하고 있지 않는가?

바울은 2차 선교여행 때, 그리스 아테네 서쪽 64km에 위치한 항구 도시인 고린도에서 18개월 동안 전도 활동을 했다(행 18:11). 고린도는 당시 로마 제국 내에서 로마, 알렉산드리아, 안디옥에 이어 네 번째로 큰 도시였다. 지중해의 해상 교통과 무역의 중심지로서 크게 번영한 곳이었다. 그리스의 아폴로 신전, 포세이돈 신전 등 뿐만 아니라, 이집트의 이시스 신전, 세라피스 신전과 수로보니게의 아스다롯 신전 등 여러 나라와 민족의 우상들로 차고 넘쳤다. 고린도를 상징하는 여신 아프로디테의 신전에는 1,000명 가까이나 되는 여사제(신전 창녀)가 있었는데, 온갖 음란한 행각들이 벌어졌다. 영단어 ‘corinthian'(고린도인)은 사치스럽고 방탕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고린도 교회에서 여러 파벌 문제와 성도덕적 문제가 불거지자,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에게 서신을 보낸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에게 신앙의 본질로 주의를 환기시켰다. 고린도전서 1, 2장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 복음의 비밀을 깨달아 알게 하시는 성령님에 대하여 기록한다.

여기서 바울은 서양 철학의 발원지인 그리스의 고린도 교인들에게,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고 강조한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지혜와 총명을 폐하시고 어리석게 하는데, ‘지혜자’, ‘학자’, ‘철학자’ 등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한다. 즉, 지혜가 사라진 ‘지혜자’, ‘학자’, ‘철학자’의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으며, 복음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지혜 있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 학자가 어디 있습니까? 이 시대에 철학자가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지혜를 어리석게 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이 그들의 지혜로는 자기를 알지 못하게 하시고 오히려 그들의 눈이 어리석게 보이는 전도의 말씀으로 믿는 사람을 구원하려 하셨습니다.”(고전 1:20~21 현대인)

왜 그들의 지혜가 하나님을 알지 못할 정도로 어둡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어리석게 보았는가? 세상의 지혜자, 학자, 철학자의 지식과 지혜를 집대성 해나간 그리스 철학의 자체 특성에 기인한다. 성경은 철학이 하나님이 아닌 인간의 가르침이요, 세상의 초보적인 원리에 근거한 것임을 강조하며, 그것에 사로잡히지 말라고 경계한다. “여러분은 실속 없고 기만적인 철학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이것은 전통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사람의 가르침이나 이 세상의 초보적인 원리(rudiment)에 근거한 것이지 그리스도에게 근거한 것이 아닙니다.”(골 2:8 현대인)

그리스 철학은 주전 7세기의 자연철학으로부터 시작하여 주전 5세기의 플라톤과 그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서 크게 발전하여 점차 그 사상과 내용을 계승하고 보완해 나간다. 이들 그리스 철학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와 법칙의 기초 원리에 대해 부분적으로만 이해할 따름이다. 오히려 왜곡시키는 부분이 많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께 뿌리 내린 것이 아니기에 비성경적, 반성경적으로 흘러갈 수 밖에 없으며, 하나님의 선하신 생각과 마음의 거울인 사람의 양심을 깨뜨린다.

철학자 ‘화이트헤드’는 서구 철학은 플라톤 철학의 주석이라고 했다. 플라톤은 우주론, 정치론, 수사학, 기하학, 음악, 미학 등 다방면에 걸쳐 방대한 저술을 남겼는데, 그리스 철학은 물론이거니와 서구 철학의 근간이 되었다. 자연철학자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등을 위시한 그리스 철학은 그리스 다신교 종교의 영향권에 있음을 이전에 언급한 바 있다. 때문에 서구 철학자들은 그리스 철학의 윤회론적, 무신론적, 범신론적 사상 등에 알게모르게 깊이 물들어 버릴 뿐만 아니라, 그리스 다신교 종교에 있는 살인, 음란, 동성애 코드에도 크게 영향을 받아 올 수 밖에 없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최고신인 제우스는 티탄 신족의 수장 크로노스와 레아의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를 왕좌에서 쫓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며, 누이 헤라와 결혼한다. 신들과 인간 세상을 통치하며, 수많은 여성들을 범했다. 급기야 제우스는 스파르타 왕 틴다레오스의 아내인 레다에게 반해, 백조로 변신하여 강간한다. 그뿐만 아니라, 난봉꾼 제우스는 미소년 가니메데스의 외모에 빠져, 그를 납치하여 자신의 술시중을 삼고 가까이 한다. 여기서 단적으로 그리스신 중 하나인 제우스의 몇 가지 사례만 보더라도, 그리스 다신교 종교의 음란, 수간, 동성애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플라톤은 그의 저술인 ‘대화편’의 ‘향연’에서 에로스(사랑)를 다루고 있다. 이성적인 사랑도 나오지만, 성인 남자와 젊은 청소년과의 동성애를 주로 묘사하고 있다. 교육을 목적으로 한 도제 관계에 빗대어, 지식 전수를 받는 소년이 지식을 가르쳐주는 남자의 동성애를 허용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플라톤은 천한 사랑을 하는 자는 여성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며, 고귀한 사랑을 하는 자는 젊은 청소년에게 성적 매력을 느낀다고 했다. 또한 군대에서 동성애를 하면, 서로를 사랑하기에 동성애 상대를 위해 엄청난 전투력을 발휘한다고 했다. 이밖에도 동성애에 대해 많이 언급했는바, 플라톤이 동성애의 중요한 철학적 이론의 토대가 됨은 주지의 사실이다.

동성애가 그 근거로 삼는 진화론도, 그 기원은 다름아닌 그리스 철학이다. 주전 6세기, 그리스 철학자 ‘아낙시만드로스’는 모든 생물이 최초의 공통 조상에서 시작하여, 종분화를 거쳐 서로 다른 생물들이 되었다는 진화 개념을 주장했다. 그리스, 로마, 이슬람 등의 여러 철학자들이 그 이론을 따랐다. 18세기에 이르러서 피에르루이 모페르튀와 에라스무스 다윈이 다시 진화론을 제창하였다. 19세기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1859년 초판)은 그 이론의 절정을 이룬다.

성경은 진화론의 주장과 달리,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때부터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창 1:12) 내게 하셨고,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창 1:21)하셨으며,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창 1:25)셨다고 명시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창 1:27)하셨음을 분명히 밝힌다. 성경의 내용들은 고고학, 생명유전공학, 물리학, 우주과학 등 과학 기술이 발전할수록, 더 사실로 증명되고 있으며, 많은 자료를 통해 발표되고 있다.

진화론을 좇는 사람들은 성경과 다른, 잘못된 가설을 설정해 놓고, 관찰 및 실험 등의 연구 과정을 통하여 검증과정에 들어간다. 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데이터가 나오지 않아도, 심지어 정반대의 결과인 성경을 입증하는 데이터가 나와도, 부분적인 데이터를 갖고 그들의 주장이 옳다고 우긴다. 그리고 과학적이라고 말하는데, 학자의 양심을 저버리는 행위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그리스 철학적 세계관에 빠진 사람들은 오류와 맹점이 발견되도, 계속 추종하고 맹신하는 성향이 강하다. 진화론과 접목하여 동성애 유전자가 있다는 말은 진작 허구로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있다고 주장하며 믿는다. FDA(미국 식품의약국)에서 동성애가 에이즈(AIDS)의 주원인 감염경로라고 과학적으로 입증하며 게시했는데도, 아니라고 자기기만적 확신을 하며 홍보까지 한다.

펭귄, 갈매기, 기린, 코끼리 등 여러 동물 중, 그 종의 일부 개체들의 동성애 경향을 보고, 인간의 동성애를 정당화하기까지 하는데, 사람은 동물이 아니다. 정작 자신은 짐승처럼 대우 받고, 짐승에 빗대 모독받는 것은 싫어하면서, 왜 사람을 동물과 비교하는지 참 이율배반적이다. 그들 이론을 보면, 어디까지가 사람의 모습이고, 어디까지가 짐승의 모습인지 도통 알 길이 없다. 이론의 전제와 기초 자체가 오류이므로, 계속 잘못된 논리만을 생산해 낼 뿐이다.

덧붙여,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수학하고 헬라 제국을 세운 알렉산더 대왕은 동성애를 하였으며, 제국 내에 동성애 문화가 성행하였다. 그리스의 다신교 종교와 철학을 받아들인 로마 제국도 황제와 상류층에 동성애가 만연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로마 제국의 하드리아누스 황제와 안티누스는 동성애로 유명했다.

로마 제국 내 북아프리카의 히포의 주교 어거스틴은 구교에서 ‘교회의 박사’라고 칭송 받는다. 어거스틴은 구교의 신학의 근간을 구축하였는데, 플라톤 철학을 중심으로 신학을 정립하였다. 때문에 플라톤의 전체주의적, 동성애적 철학의 영향을 받아왔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동성애 추문이 끊이지 않는 이유이다. 신교에서도 그리스 철학을 토대로 신학 이론을 만든 자들 역시 그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를 볼 때, 철학은 신학의 시녀라고 했지만, 그 반대의 생각과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정리하자면 성경의 진리를 벗어날 때, 그리스 철학에 빠질 때 동성애에 동조하게 될 수 밖에 없다. 철학적인 사람은 플라톤과 철학자들의 사상에 사로잡히고 그 삶을 따라간다. 철학의 한계, 인간 이성의 한계를 깨달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사로잡히며, 그 삶을 쫓아간다.

끝으로 동성애 정책을 입안하는 사람들과, 동성애를 옹호하는 학자들에게 한마디 묻고 싶다. 당신들 가족이나 자녀가 동성애와 수간을 원한다면, 자유롭게 하도록 놔둘 작정인가? 자신의 가정과 자녀가 귀하면, 남의 가정과 자녀도 귀한 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