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와 동성애 1

요셉 목사
(한세대 신학대학원 졸업. 개척교회 목사)

얼마 전 국가인권정책 기본계획(NAP) 중에 ‘양성 평등’에서 ‘성 평등’으로 방향을 전환한 조항이 있다. 한마디로, 동성애에 대한 빗장을 활짝 열겠다는 정책이다. 기독교인들은 동성애에 대하여 어떤 시각을 갖추어야 하는가? 먼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동성애에 대해 알아본 후, 그리스 철학 속에 숨겨진 동성애와 그 문제점에 대하여 차례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하겠다.

성경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등장하는 동성애 사례는 창세기 19장에 기록되어 있다. 사해 남쪽 끝, 싯딤 골짜기에 소돔, 고모라, 아드마, 스보임, 소알 등 다섯 성읍이 있었고, 그 다섯 왕들이 동맹을 맺고 있었다. 이들 도시들은 문물이 크게 번영했으며, 도덕적 퇴폐로 유명했다.

아브라함과 그 조카인 롯이 벧엘과 아이 지역의 사이에서 함께 거할 때, 아브라함과 롯의 가축이 너무 많아 그들의 목자들이 서로 다투게 되었다. 이에 그들은 분가하여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소돔으로 이주하였다(창 13:1~12). 아브라함과 롯은 본디 객과 나그네를 잘 대접하는 사람들이었다(창 18:1~8 ; 창 19:1~3). 이에 반해 소돔 사람들은 오히려 롯에게 찾아온 손님들을 환대하기는 커녕, 집단으로 동성 강간하려는 극악무도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잠자리에 들기 전에 소돔 사람들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사방에서 마구 몰려와 그 집을 둘러싸고 롯을 부르며 ‘오늘 저녁 네 집에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그들을 끌어내라. 우리가 강간하겠다’하고 외쳤다.”(창 19:4~5 현대인)

그들은 손님들을 필사적으로 보호하려는 롯에게 횡포를 부리고 멸시하기까지 한다(창 19:6~9). 일찍이 소돔 사람들은 그들을 포함한 다섯 동맹의 왕들과, 엘람, 고임, 스보임, 소알의 네 왕의 연합 적군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재물과 양식을 모조리 빼았겼다. 아울러 소돔에 있던 롯도 붙잡혀갔다. 그 때 잘 훈련된 종 318명을 거느리고 연합 적군을 쳐부수며, 약탈 당한 것들을 다시 되찾아준 은인이 아브라함이고, 그 조카가 바로 롯이 아닌가?(창 14:1~24) 여기서 소돔 사람들은 인륜을 저버린 자요, 인면수심의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성경은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레 20:13)고 경고한다.

영어에 ‘sodomy'(소돔 사람의 행실)라는 단어가 있다. ‘남색’, ‘수간’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데, 소돔 사람들의 성적 타락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들은 인간 타락의 종결자들이었다. 이러한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창 13:13)이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결국 그들은 유황과 불이 비처험 쏟아지는 맹렬한 심판을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 성을 잿더미가 되게 하셔서 훗날 경건치 않은 사람들에 대한 본보기로”(벧후 2:6 현대인) 삼으셨다.

신약에서도 동성애의 해악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로마서 1장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 등 이방인이나 할 것 없이 믿음(성경이 정의하는)으로 구원받음을 기록하고 있다. 아울러 동성애를 비롯하여 악한 행동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자들의 특징들을 열거한다. 믿음으로 사는 의인과 달리, 그들은 “악한 행동으로 진리를 막는 모든 죄인들”(롬 1:18 현대인)이다.

먼저, 성경은 그들이 자신들의 악행에 대해 핑계를 댈 수 없다고 경고하고 있다(롬 1:20). 왜냐하면,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롬 1:19)고 하셨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께서 소돔 사람들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에게 양심을 주셨고(롬 2:14~15),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롬 1:20)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롬 1:21)졌고,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롬 1:25) 섬긴다.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동성애)에 내버려 두셨다.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단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롬 1:26~27)

그들의 죄악상은 비단 동성애 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롬 1:28) 두셨다. 그로 인한 악행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그들은 온갖 부정, 추악, 욕심, 악한 생각, 시기, 살인, 다툼, 사기, 악의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수군거리며 서로 헐뜯고 하나님을 미워하고 건방지고 교만하며 자랑하고 악한 일을 꾸며내고 부모에게 불순종하고 미련하며 신의도 인정도 없고 무자비합니다.”(롬 1:29~31 현대인)

더 나아가 그들은 “이런 식으로 사는 사람은 죽임을 당한다는 하나님의 법을 알면서도 그들은 자기들만 이런 짓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하는 사람들을 옳다고 두둔까지 하고”(롬 1:32 현대인) 있다. 요약하건대 그들은 본인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동성애를 필두로 하여, 각종 죄악들을 적극 장려하고 확산시키는 자들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악한 행동으로 진리를 막는 모든 죄인들’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로마서 1장, 2장 이하를 읽어보면 이방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유대인과 기독교인들 중에도 해당되는 말씀임을 잘 알 수 있다.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롬 2:9) 더 구체적으로 보면, 그들은 바로 초대교회 당시에 할례만 받으면, 하나님의 법인 율법(the Law)을 지키지 않아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한 사람들임을 로마서 2장, 3장 등에서 적시하고 있다. 그들은 성경의 진리와는 동떨어진 주장을 한 사람들이다.

이를 볼 때, 헬라인 등 이방인 뿐만 아니라, 유대인과 기독교인들 중에서 동성애 죄악을 아무 거리낌 없이 허용하고 범하며, 인류 공동체에 확대시키는 일은 성경의 진리를 바꾸는 일(롬 1:25)에서 시작됨을 알 수 있다.

덧붙여 하나님의 진리를 바꾸고 왜곡하는 신학자들 중에, 로마서 3장 28절의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는 말씀을 인용하며 바울이 율법 폐기론을 말했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바울이 성경 계시의 완성자라고까지 한다. 과연 그 주장이 맞을까?

위에서 로마서 초두부터 바울이 하나님의 진리인 말씀을 바꾸고 온갖 행악하는 자들을 경계하며, 그들의 논거를 반박했음을 살펴보았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유대인의 하나님이시지만, 이방인의 하나님이심도 강조하며(롬 3:29), 믿음으로 구원 받음을 강조한다. 그 믿음은 하나님의 법인 율법(the Law)을 지키고 순종하는 데 이르는 믿음이다.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니라”(롬 3:30~31)

이렇듯 바울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율법을 파기하지 않고 율법을 굳게 세워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바울이 율법 폐기를 하고 성경 계시의 완성자라고 주장하는 논리대로라면, 주후 7세기에 마호메트(570년~632년)가 알라신은 유대인과 기독교의 하나님과 똑같은데, 자신이 알라의 최종 계시자라고 한 말과 다를 바가 없다. 바울 서신서보다 더 최종적인 계시의 책인 코란만을 봐야 한다는 말로 귀결되지 않는가? 구약의 율법을 폐하면 곧 구약을 폐기하는 것이요, 구약의 법을 폐하지 않고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서도 폐기하는 것이요, 결국 성경 전체를 파기하자는 말과 같다.

진리를 바꾸는 자들의 특색은 성경의 문맥을 무시하고, 일부만 인용하여 변형시킨다. 로마서 2장, 3장은 할례만 받으면 무슨 죄를 짓고 살든 구원받는다는 내용을 반론하고 있으며, 곳곳에 할례라는 단어가 명시되어 있다. 로마서 3장 28절의 ‘율법의 행위’는 율법 전체를 말하는 게 아니고, 할례를 뜻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쏟으신 대속은 단번에 드린 완전한 희생 제사였기에(히 7:27), 피흘리는 희생 제사는 신약에서 예배로 이어졌다. 아울러 선민의 표징으로서 피흘리는 의식인 할례도 신약에서는 마음의 할례로 이어졌다(롬 2:29).

전통적인 성인권의 개념인 양성 평등에서 성 평등으로 단어를 바꾸고, 의미를 변형시킨 것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남녀가 결혼해서 자녀를 낳고 사는 것은 천부적인 권리이자, 인류의 보편적인 양심과 상식이다. 현 집권 정부 논리대로 동성애를 인권이라고 한다면, 더 나아가 수간(짐승과 교합), 소돔 사람들처럼 집단 동성 강간도 인권문제로 옹호해야 한단 말인가? 어디까지가 인권이고 어디까지가 비인권인가? 진정으로 인권문제로 본다면, 그들을 동성애의 깊은 수렁에서 건져주고, 탈동성애로 선도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들을 AIDS(후천성면역결핍증)로 빨리 죽게 하지 않고, 천수를 누리며 건강한 삶을 영위하도록 하는게 진정한 인권이 아니겠는가?

잘 알다시피, 공산주의를 추종하는 좌파들의 특징은 상대방을 친일파로 굴레 씌우는 것을 시작으로, 공산독재자 찬양으로 끝난다. 진리를 바꾸는 자들의 특징이 있다. 성경의 진리를 조금씩 조금씩 바꾸는 것을 시작으로, 종교다원주의 찬양으로 끝난다. 물론 그 공통점은 동성애를 적극 지지하고, 법제화 시킨다는 점이다. 둘 다 말바꾸기에 능하고, 거짓을 진리인 양 포장하는 데 전문가들이다. 동성애를 옹호하는 세력은 반자유민주주의 세력이요, 반기독교 세력이다. 때문에 동성애는 그들의 주장대로 단순히 인권 문제로만, 바라볼 성격의 사안이 아니다. 기독교와 자유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는 마귀 사탄의 고등전략이자, 프로파간다이다. 아름다운 금수강산, 한민족의 터전을 소돔과 고모라의 소굴로 만드는 것을 한 치도 용납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