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을 바라보는 안경

요셉 목사
(한세대 신학대학원 졸업. 개척교회 목사)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2017년 12월 6일에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했고, 지난 5월 14일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관을 행정수도인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하였다. 이에 한국내 많은 언론 뿐만 아니라 해외의 수많은 언론도, 이스라엘과 아랍권 국가들 간의 더 극한 충돌을 불러일으키는 조치라며 부정적인 논조를 쏟아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세의 일을 말씀하실 때, 거짓 그리스도들이 여기 저기 출현할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거짓 그리스도를 그리스도라고 하는 거짓 정보를 퍼뜨리는 일들이 발생하니, 그것에 속지 말라고 말씀하셨다(마 24:23~26). “그 때 누가 너희에게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아라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예언자들이 일어나 큰 기적과 놀라운 일을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선택된 사람들까지 속이려고 할 것이다”(마 24:23~24 현대인) 이 말씀을 통해 마지막 때에 거짓 정보가 들끓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거짓 정보를 말하며, 여론을 장악해 버린 압살롬의 경우를 통해, 거짓 정보(여론)에 속지 않는 방법을 알 수 있다. 왕자인 압살롬의 여론 장악 방법은 백성들의 소송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에 있었다(삼하 15:1~6). 당시에 왕은 송사 문제를 심리하고 판결하는 재판관의 역할도 했기에, 매일같이 다윗 왕의 판결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성문으로 들어왔다.

압살롬은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성문으로 나가곤 했는데 그는 성문 길가에 서서 누구든지 소송 문제로 왕을 찾아오는 사람이”(삼하 15:2 현대인) 있으면, “네 송사를 들을 사람을 왕께서 세우지 아니하셨다”(삼하 15:3)고 하며, 거짓 정보를 퍼뜨렸다. 또한 자신에게 재판을 받으러 오면 공정하게 해결해주겠다고 하며(삼하 15:4), 다윗 왕에게 판결 받지 않고 자신에게 판결 받도록 유도했다. 압살롬은 지속적으로 거짓 정보를 뿌리며, 자신에게 찾아온 힘없는 민초들의 억울한 문제 및 송사를 해결해주고,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었다. 압살롬의 이러한 위민 활동은 민심(여론)을 도적질(장악)하고, 자신의 정치권력을 확장하기 위한 위선이었다. 4년 동안의 치밀한 여론 장악 음모를 마친 후에, 압살롬은 헤브론에 가서 반역을 일으켰다. 반란 세력이 점점 커졌고, 압살롬을 따르는 백성들도 점점 더 많아졌다. 결국 다윗은 도피하게 되었고 압살롬은 정권을 찬탈하였다(삼하 15:7~37).

왜 압살롬의 거짓 정보를 통한 여론 장악이 성공할 수 있었을까? 백성들이 ‘직접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했기 때문이다. 재판을 받으러 오는 백성들이 다윗왕에게 직접 얼마든지 접촉해서 재판 정책 변경에 대한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압살롬의 입에서 나오는 말만 믿고 제대로 확인을 하지 않은 것이다. 즉, 간접확인만 한 것이다. 여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 이러한 참담한 결과가 나오기 마련이다. 눈여겨볼 점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예언한 선지자적인 시(시 22편)를 쓴 다윗 왕도, 당대의 선지자들도, 제사장들도 압살롬의 여론 장악 행위를 제대로 인지 못했다는 점이다.

항상 여론의 진위여부를 확인하고 ,비평하며 보고 듣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국내 뉴스 뿐만 아니라, 여러 해외 뉴스도 병행해서 비교해보며, 한 사람의 말만 듣지 말고 여러 경로로 사실을 확인하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

유대인에 관한 부정적이고 왜곡된 여론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유대인들은 잘못된 여론으로 인해 수많은 굴곡을 겪은 민족이다. 유대인의 박해수난사를 살펴보면, 구약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집트의 노예 민족이었을 때의 오랜 착취와 박해, 페르시아(바사) 제국의 아하수에로 왕 때 2인자인 아각 사람(아말렉 족속 출신) 하만의 유대인 대학살 계획 등이 기록되어 있다.

주후 70년, 예루살렘 함락 이후로 유대인들은 국가 없는 민족이 되었다. 로마 제국 시대에 로마의 다신교 종교와 황제를 신으로 섬기는 것을 거부하는 수많은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이 학살당했다. 기독교인들이 많아지고 주류 세력을 이루자, 이제는 기독교에 의한 유대인 박해가 시작되었다. 또한 주후 7세기에 발흥한 이슬람교는 창시될 때부터 유대인 집단 학살을 자행했다. 중세 십자군 전쟁(주후 1096년~1270년) 때, 이슬람 교도의 수중에 있는 성지 예루살렘의 탈환을 목표로 내세웠던 십자군의 유대인 학살이 있었다. 세례를 거부한 유대인들을 죽이고, 예루살렘에 진군했을 때, 회당의 유대인들을 불태웠다. 유대인에 대한 박해와 추방은 스페인, 포루투갈, 프랑스 등 기독교 국가를 중심으로 계속 이어졌다. 스페인은 유대인들에게 기독교로의 강제 개종 칙령을 내려 유대인들을 박해하고 추방했다. 14세기 중엽에서 16세기까지 대부분의 독일 지역에서 유대인들은 추방당했다.

서유럽 국가들의 유대인 박해로 인해 오갈곳 없는 유대인들을 폴란드를 비롯하여 동유럽에서 포용하였다. 폴란드는 경제를 발전시키려는 목적으로 유대인에게 문호를 개방했는데, 18세기 말 150만명이었던 폴란드의 유대인은 2차 세계대전 직전, 300만 명까지 증가했다.

유대인들이 중세에 여러 국가들로부터 박해를 받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상업적 재능 때문이었다. 중세 국가들에 있어 경제 부흥을 위해서는 반드시 유대인들을 필요로 했다. 그런데 경제를 발전시켜 주면, 그 주체인 유대인들에게 시기, 질투, 불만을 가진 정부와 국민들의 여론에 의해 희생양이 되곤 했다. 때문에 중세, 근세의 반유대 정책은 언제나 유대인의 재산몰수부터 시작되었고, 여러 종교적인 구실을 빌미로 국외 추방령으로 이어졌다. 아울러 유대인과 전혀 상관없는 정치적 변란, 경제 공황, 전염병이 발생할 때도 국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유대인들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여 학살과 박해를 가하곤 했다.

서구 사회뿐만 아니라 동양에까지 유대인의 대한 편견과 반감을 확산시킨 것은 영국의 세계적인 극작가인 세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주후 1600년 초판)이라는 작품이다. 세익스피어는 베니스의 상인에서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을 피도, 눈물도 없으며, 돈밖에 모르는 냉혈한으로 묘사하였다. 유대인에 관해 펜을 들었던 세익스피어는 사실 유대인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가 태어나기 전에 모든 유대인들은 이미 오래 전 영국에서 추방되었기 때문이다. 단지 그는 유럽에 퍼져있던 반유대주의의 편견의 흐름과, 이탈리아 소설을 기반으로 작품을 창작했을 뿐이다.

이러한 서구 국가들의 반유대주의 정서와 여론을 형성한 이면에는 무엇보다도 잘못된 신학 이론들이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세 초기에 구교 신학의 근간을 구축한 어거스틴은 대표적인 반유대주의적인 신학 이론을 제공했다. 먼저 그는 성경보다, 성경을 해석하는 교회의 권위가 더 높다고 한 신학자였다. 교회를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고,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교회(교회의 수장이 황제에서 교황으로 변천함)의 권위에 철저히 복종하게 하는 등 교회로 하여금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도록 이론화시켰다. 구교를 전체주의적인 성격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플라톤의 철학을 바탕으로 신학 이론을 정립했으니 당연한 귀결이다. 플라톤의 정치 철학은 전체주의적, 독재주의적 성격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어거스틴은 유대인들을 ‘예수님을 죽인 자들’이라고 정의하며, 아브라함의 자녀인 유대인들이 받아야 할 복을 신약 시대의 교회가 대신 차지한다는 신학 이론(이스라엘 대체 신학)을 만들었다. 이는 그가 제시한 교회론의 연장선상에서 주장한 것인데, 교회가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을 대체한 것이라는 뜻이다. 이로 인해 십자군 전쟁 때, 어거스틴의 신학 이론에 충실했던 교황들은 유대인들을 향해 ‘그리스도를 죽인 자들’이라고 말하며 탄압에 앞장섰다.

종교 개혁가들은 구교의 구습을 타파하고, 성경의 말씀으로 돌아가려는 개혁 운동을 전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교의 신학 이론에서 완전히 탈피하지는 못했다. 루터는 처음에는 친유대주의 성향이 있었지만, 점점 유대인에 대한 시각이 변하면서 후에 ‘유대인과 그들의 거짓말’이라는 글을 발표하며 반유대주의자로 변한다. “유대인의 회당을 불지르고, 유대인들을 죽이며, 탈무드를 빼앗으라”고 하는 등 유대인 탄압을 선동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19세기 독일에서 일어났던 반유대주의 광풍과, 20세기 유대인 대학살을 자행한 나치 히틀러 정권에까지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구교, 신교의 왜곡된 반유대주의 신학 이론은 서구 사회의 반유대주의의 기저를 형성하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금 현시대에도 그 영향권에 있음을 부정할 수만은 없다.

반유대주의를 일으킨 잘못된 여론과 신학 이론의 안경을 벗어야 한다. 성경적인 관점으로 유대인을 보아야 한다. 유대인들이 로마 제국에 의해 주권을 잃고 전 세계에 흩어지고 박해를 받은 이유는 신명기 28장에 기록된 말씀의 실현이었다. 모세는 출애굽 2세대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면, 모든 저주(신 28:15~68)가 임한다고 경고했다. 우상을 섬기며,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들을 버렸기 때문에 나라를 잃고, 열국에 흩어지며 비방을 받게 되었다. “여호와께서 네 적군 앞에서 너를 패하게 하시리니 네가 그들을 치러 한 길로 나가서 그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할 것이며 네가 또 땅의 모든 나라 중에 흩어지고”(신 28:25) “여호와께서 너를 끌어 가시는 모든 민족 중에서 네가 놀람과 속담과 비방거리가 될 것이라”(신 28:37)

유대인들이 2천년 동안 이루 말할 수 없는 박해와 수욕을 받은 후, 나라를 다시 회복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입었기 때문이요, 말씀의 성취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였는데,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께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의 때를 질문했다. 예수님께서는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행 1:7)라고 하시며, 이스라엘 주권 회복의 때가 있음을 말씀하셨다.

이와 더불어 주목할 점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이 UN 결의에 의한 합법적 국가 성립이었다는 사실이다. 왜곡된 여론의 주장처럼, 유대인들이 불법적으로 팔레스타인 땅을 점령한 게 아니라는 뜻이다. 건국 전에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 국가 창설을 반대하는 아랍권으로 인해, UN은 팔레스타인 분할 계획 안건을 유엔 총회 결의(제181호)로 통과시켰다. 인구의 82%를 차지하는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 지구의 56% 가량 되는 땅을 받고, 예루살렘을 포함하여 나머지는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에게 분할하자는 계획이었다. 유대인들은 찬성하고, 아랍인들이 반대하자 UN에서의 표결로 이어졌다. 결과는 찬성 33표, 반대 13표, 기권 10표였다.

물론 유대인 중에 성경에서 금하는 고리대금업을 하거나 투기성 금융 및 사행업 등을 하는 자들도 있다. 여러 분야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행보를 하는 이들도 있음으로 유대인을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크리스천이라고 하면서 성경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들이 있듯, 그들 중에도 성경적으로 살지 않는 자들이 있음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유대인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비롯하여, 많은 언약으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보호받는 선민들이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누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창 12:2~3)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 일획도 폐하여지지 않는다. “율법(the Law)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가 없어짐이 쉬우리라”(눅 16:17)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성취하시는 하나님, 영원히 신실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언약 때문에 유대인들을 박해하고 추방한 나라들은 한결같이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어려움을 겪거나,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반대로 수용한 나라들은 흥하였다. 영국은 십자군 전쟁 때 유대인들을 박해하고 추방해버린 전력이 있는 나라였지만, 찰스 1세가 처형된 뒤에 올리버 크롬웰이 주후 1656년 유대인 정착을 다시 허용했다. 이로 인해 대국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아울러 유대인들은 구약과 신약의 말씀을 기록하고 전파한 민족이기 때문에 박해를 당한 측면이 크다. 옛부터 지금까지 유대인들은 구약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며 고수하는 민족임을 알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증거할 제자들에게,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은 세상이 육신을 입고 오신 말씀이신, 예수님을 미워하기 때문임을 말씀하셨다(요 15:18~19).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요 15:23)고 강조하셨다. 우리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에 빚진 자들이다. 유대인들은 구교와 신교에 의해 많은 학살과 박해를 받았기 때문에, 잘못된 메시아관 등으로 쉽게 복음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받았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다시 듣도록 갚아줘야 한다.

시온(예루살렘)은 단순한 이스라엘의 한 도시가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아는 열방의 민족들을 시온에서 낳았다고 강조한다(시 87:4~6). “시온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 저 사람이 거기서 났다고 말하리니 지존자가 친히 시온을 세우리라 하는도다 여호와께서 민족들을 등록하실 때에는 그 수를 세시며 이 사람이 거기서 났다 하시리로다”(시 87:5~6) 때문에 성경은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시 122:6)라고 명시한다. 한반도의 평화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의 평화를 위해서 기도해야 할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