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론 제국주의와 성막

요셉 목사
(한세대 신학대학원 졸업. 개척교회 목사)

전 세계 도시화의 속도가 점점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하늘을 찌를 듯한 100층 이상의 건물들이 여기저기 들어서며, 점점 높이를 갱신한다. 초고층 빌딩을 짓는 국가에게 경제 위기가 다가온다는 ‘마천루의 저주”라는 경제 이론이 있다. 20세기 이후 서구로부터 아시아, 중동에 이르기까지 여러 대륙, 여러 나라들에 제법 적중돼 왔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오실 때,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목자가 양과 염소로 구분하는 것처럼,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양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마 25:35~36)는 평가를 받는다. 양의 편에 있던 사람들은 의아해하며, 우리가 어느 때에 그렇게 했습니까?라고 반문한다(마 25:37~39).

반면에, 염소로 분류된 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양의 편에 있는 자들과 상반된 평가를 받는다. 마찬가지로 그들도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마 25:44)라고 되묻는다. 왜 두 편의 사람들 모두 예수님께 반문했을까? 성막과 바벨론을 살펴봄으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집트의 노예살이로, 밤낮 신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안식할 수 있도록 해방시켜 주셨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거룩한 날이 됨이니라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모두 죽일지며 그 날에 일하는 자는 모두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어지리라”(출 31:14)고 엄히 명령하셨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거룩히 구별하신 날이다.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일하고 쉬신 날이며, 여섯째 날에 창조된 사람도 함께 안식하게 하셨다. 하나님과 교제함으로 영이 거룩해지고, 육신의 피로를 씻어주는 날이 안식일이요, 하나님의 선하신 창조 계획의 정점이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범죄함으로 인류는 죄악의 노예가 되고, 하나님과의 안식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참된 안식을 되찾는 길로 하나님은 모세에게 성막을 짓고,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하셨다. 모세의 성막은 안식일에 하나님께 희생제사(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을 만나며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거룩히 구별된 처소였다. 성막과 관련된 모든 기구는 죄사함 받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보여준다.

아울러 성막은 하나님이 명령하신 방법과 재료와 하나님께서 기름부으신 장인들에 의해 만들어져야 한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회막과 증거궤와 그 위의 속죄소와 회막의 모든 기구와 상과 그 기구와 순금 등잔대와 그 모든 기구와 분향단과 번제단과 그 모든 기구와 물두멍과 그 받침과 제사직을 행할 때에 입는 정교하게 짠 의복 곧 제사장 아론의 성의와 그의 아들들의 옷과 관유와 성소의 향기로운 향이라 무릇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그들이 만들지니라”(출 31:7~11)

또한 성막에서는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기름부음 받은 제사장과, 지정하신 날짜와 희생제물과 방법에 의해 제사가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에 주지해야 한다. 다른 제사장, 다른 제물, 다른 불을 사용하는 일은 절대 금하고 있다. 성경은 아론의 아들이자 제사장인 나답과 아비후는 “다른 불을 여호와 앞에 드리다가 죽었더라”(민 26:61)고 증거한다.

왜 성막의 건축과 제사는 이토록 엄격했을까? 성막은 하늘(천국)의 모형이요, 구원의 유일한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죄사함을 뜻하는 희생제사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성소 안, 지성소에서의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성별된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막은 제1성전인 솔로몬 성전, 제2성전인 스룹바벨 성전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무엇보다 성막은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과 그 몸인 성도를 나타낸다. 때문에 구원주이시자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님과의 연합은 영생이요, 단절은 영벌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 변형, 희석시키는 행위, 예수 그리스도의 이외의 구원을 제창하는 행위, 성령님이 아닌, 맘몬의 영이나 다른 영을 받고 성경 말씀을 전하며 가르치는 행위 등은 어두움의 영과 연합하는 일이다.

그리고 성막은 가나안을 향해 이동해야 하고 어떠한 핍박과 유혹이 와도 애굽으로 되돌아가면 안 된다. 구체적인 행선지와 이동 시점도 하나님의 인도에 따라 이동해야 한다(출 40:36~38). 알다시피 성막의 유일한 입구는 동쪽에 있다. 그 성막의 이동 경로는 가나안이 있는 동쪽이다. 출애굽 2세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입성할 때, 가나안의 동편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윗 왕 때에 다윗이 정복하고 수도로 삼은 해발 약 800미터 유대 산지에 위치한 예루살렘(여부스 성)으로 이동해 올라갔고, 솔로몬 왕 때 모리안 산에 건축된 솔로몬 성전에 최종적으로 옮겨졌다(대하 5:2~7). 이는 성도들에게 죄악의 처소인 이집트에서 나와 광야길과, 가나안에서의 전쟁, 그리고 천국으로 올라가는 신앙여정을 보여준다.

오직 하나님의 법(말씀)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그대로 믿고 순종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며, 성령님 안에서 말씀의 법들을 성취하고 살아야 하는 게 성막(교회)의 몸인 성도의 삶이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양의 무리로 속하는 자들은 바로 그러한 삶이 몸에 체득된 사람들이다.

바벨론은 ‘혼란’이라는 뜻이다. 이라크의 수도인 바드다드 남쪽 50km 유브라데 강변에 위치했던 고대의 성읍으로, 노아의 아들 함의 손자인 니므롯에 의해 건설된 도시 중 하나였다. “구스는 또 니므롯이라는 아들을 낳았는데 그는 세상에서 최초의 정복자였다. 그는 여호와를 무시하는 힘 센 사냥꾼이었으므로 ‘니므롯처럼 여호와를 무시하는 힘 센 사냥꾼’이라는 유행어까지 생기게 되었다. 처음에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 에렉, 악갓, 갈레에서 시작되었다. 거기서 그는 앗시리아로 가서 니느웨, 르호봇-일, 갈라, 그리고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큰 성 레센을 건설하였다”(창 10:8~12 현대인)

즉, 니므롯은 인류 역사상, 제국주의 군주의 효시다. 여러 제국주의 국가의 터(성읍)와 기반을 닦은 자였다.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에서 시작되었는데, 사람들은 그곳에서 바벨탑을 쌓았다. 바벨탑(지구라트)은 피라미드 모양처럼 아랫부분에서 윗부분으로 올라갈수록 면적이 작아지며, 맨 꼭대기에 우상 신전이 자리잡고 있었다. 바벨론은 이후 여러 제국, 족속에 의해 주인이 뒤바뀌었으며, 후대에 이 바벨론 성읍을 중심으로 바벨론 제국이 세워졌다. 주전 5세기의 그리스 역사가인 헤로도투스는 바벨론을 보고, 크고 아름다운 도시라며 감탄했다. 광활한 평야에 위치했으며, 사각형의 모양으로 도시의 한 변 길이는 21킬로미터이며 총 둘레는 85킬로미터였다고 기록했다.

다니엘서에 나오는 바벨론 제국의 느부갓네살 왕은 꿈에서 거대한 신상 환상을 받았다. “왕이여 왕이 한 큰 신상을 보셨나이다 그 신상이 왕의 앞에 섰는데 크고 광채가 매우 찬란하며 그 모양이 심히 두려우니 그 우상의 머리는 순금이요 가슴과 두 팔은 은이요 배와 넓적 다리는 놋이요 그 종아리는 쇠요 그 발은 얼마는 쇠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단 2:31~33)

이는 다니엘의 네 큰 짐승 환상(단 7:1~28)과 숫양, 숫염소 환상을(단 8:1~27) 함께 보면, 느부갓네살의 신상 꿈이 인류사에 등장하는 제국들을 뜻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금으로 된 우상의 머리는 바벨론 제국을(단 2:38 ; 7:4), 은으로 이루어진 가슴과 두 팔은 메대와 페르시아(바사) 제국을(단 7:5; 8:20), 놋으로 구성된 배와 넓적 다리는 헬라 제국을(단 7:6 ; 8:21~22), 쇠로 이루어진 종아리와 쇠와 진흙으로 구성된 발은 로마 제국(서로마, 동로마)과 그 이후 마지막 때의 적그리스도 제국을 뜻한다(단 7:7~8).

이를 볼 때, 바벨론 제국의 느부갓네살 왕의 거대한 신상 꿈은 한마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전체주의적 제국 체제’를 뜻함을 알 수 있다. 제국의 군주들은 한결같이 많은 나라(지역)를 정복하여 살육과 파괴를 일삼고, 무거운 세금을 징수하며, 제국의 노예로 만든다. 로마제국의 체제를 이어받은 유럽의 일부 제국주의적 자본주의 국가와 그 변종인 소련과 중국 등 제국주의적 공산주의(많은 위성국가, 식민지를 둠)까지 그 모습이 동일하게 이어진다.

또한 제국의 군주들은 다신교 우상을 숭배하게 하고, 나아가 제국의 군주의우상까지 만들어 섬기게 한다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 때문에 우상숭배를 거부하는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을 탄압한다. 바벨론 제국은 여러 다신교 신들을 숭배했는데, 느부갓네살왕은 높이 27미터, 너비 2.7미터의 금 신상을 만들어 엎드려 절하게 했다(단 3:1). 그에 반대하는 유대인들인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풀무불에 던졌다. 로마 제국도 그리스의 다신교 우상들을 섬기고 황제를 신격화했다. 우상 숭배를 거부하는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고 학살했다. 공산주의 국가들도 공산주의 지도자들을 우상화하여 거대한 동상들을 만들어 숭배하게 했고,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을 죽이거나 가뒀으며, 그러한 모습은 지속되고 있다.

계시록에 나와 있는 ‘큰 성 바벨론’은 무엇을 뜻할까? 하나님을 대적하는 전체주의적 제국 체제의 완결판으로서, 전 세계적으로 다신교 우상을 섬기게 하고, 사람들을 그 시스템의 노예로 만들며,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을 대적하는 적그리스도 세력과 그 거점을 뜻한다. 물론 성경은 말세에 적그리스도 세력으로부터 이스라엘을 보호하는 강력한 국가가 있고(계12:13~14), 성도들에게 끝까지 믿음으로 인내하며 이겨내라고 권면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고 약속하신다.

성경은 큰 성 바벨론의 죄악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 죄에 참여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 천사가 우렁찬 소리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무너졌다! 큰 도시 바빌론이 무너졌다! 귀신들과 온갖 더러운 영들과 불결하고 흉측한 새들의 소굴이 되고 말았구나. 모든 나라가 그 음란의 독한 술을 마셨고 세상 왕들이 그녀와 음란한 관계를 가졌으며 온 세계의 상인들이 그녀의 말할 수 없는 사치 때문에 부자가 되었다.’ 나는 하늘에서 나는 또 다른 음성을 들었습니다. ‘내 백성들아, 너희는 거기서 나와 그녀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녀가 받을 재앙을 받지 않도록 하라.”(계 18:2~4 현대인)

여기서 큰 성 바벨론을 왜 ‘그녀’라고 말했을까? 바벨론 제국의 바벨론은 “딸 갈대아, 여러 왕국의 여주인”(사 47:5)으로 불렸기 때문이다. 아울러 로마 제국의 로마는 ‘세계의 여왕’이라고 일컬어졌던 유사점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바벨론 체제를 결국 다 무너뜨리신다. “그 때에 쇠와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서져 여름 타작 마당의 겨 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나이다”(단 2:35)

가난한 서민과 극빈자의 삶에 무관심하고 냉대하며,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부동산 투기, 고리대금업 및 유무형의 투기성 금융업, 사행산업 등을 조장하고 관여하면, 양과 염소 중 어느 편에 서게 될까? 고임금을 받으면서 더 많은 기득권을 요구함으로, 비정규직과의 임금 격차 문제, 취업난 가중 문제 등 사회적, 경제적 불균형을 야기하면 어떻게 될까?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감옥에 갇혀 있는 이십만 명의 주민들과 기독교인들에게는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으면서, 알게 모르게 북한 정권의 입장만 두둔하면 어느 편에 서게 될까?

평소 바벨론 체제의 방식대로 살아가는데 몸에 배여 있으면, 예수님의 재림 때에 자신에게 내려진 판결에 납득하지 못하여 반문하게 된다(마 25:44). 돌아올 대답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마 25:46)는 말씀이다. 성경은 말씀을 거부하고, 지키지 않는 자에게 철저히 가리워져 있다.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마 13:14 ; 사 6:9)

바벨론의 크고 화려함과, 사치와 향략과, 우상숭배와 권력지향적 방식에 마음을 빼앗기면 안 된다. 겉만 아름답게 꾸민 회칠한 무덤이기 때문이다(마 23:25~27). 바벨론의 장막이 아닌 하나님의 성막의 모습과 방식으로 살아갈 때, 진정한 존귀와 아름다움의 인생 여정의 길을 걸을 수 있다. “만국의 모든 신들은 우상들이지만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 존귀와 위엄이 그의 앞에 있으며 능력과 아름다움이 그의 성소에 있도다”(시 96:5~6)